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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무소속 후보가 지난 6일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동 벽산신익타운아파트 앞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자신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고 보도한 신문을 들어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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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격전지 르포
부산 사상구
지난 2010년 3월 부산 사상구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에 입학해야 할 이아무개(당시 13살)양이 실종된 지 10여일 만에 알몸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이양의 집에서 직선거리 500여m 떨어진 곳에 살던 김길태(38)씨였다. 김씨는 이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이양의 집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이웃집 옥상 물탱크 안에 이양의 주검을 은폐했다. 이듬해 4월 대법원은 김씨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양이 살던 집은 사상구 덕포동의 재개발지역이다. 경사진 달동네에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미로가 많아 외부인들이 집을 찾다가 헤매기 일쑤다. 빈집도 많아 낮에도 주민들이 혼자 다니기를 꺼렸다. 부산시와 경찰은 이양이 숨진 뒤에야 가로등을 추가로 설치하고 경계도 강화했다.
사상구는 1970~1980년대 대한민국 신발산업의 메카였다. 공장엔 일자리를 찾아 사상을 찾은 여공들로 넘쳐났다. 집을 구하기 힘든 이들은 달동네로 깃들었고 집주인이 셋방을 놓으면 금방 나갔다. 북적되던 사상구는 1990년대부터 쇠락해갔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신발산업이 쇠퇴하면서 큰 기업체들은 중국 등으로 옮겨갔고 영세한 업체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청춘을 바쳤던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면서 사상구는 부산의 대표 낙후지역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다. 30만명을 넘던 인구는 올해 1월 23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2여 1야
6일 오후 5시께 부산 사상구 덕포동 벽산신익타운아파트 앞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장제원(49) 무소속 후보가 열변을 토했다. 숨진 이양의 집과 직선거리 500여m 떨어진 곳이다. 장 후보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세차량에 올라 “낙후된 덕포동을 교육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박수가 터졌다. 일부는 장 후보의 이름을 외쳤다. 어느새 청중은 100여명에서 200~30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의 선친이 세운 대학의 교직원도 눈에 띄었다. 장 후보의 선친(장성만)은 학교법인 동서학원을 세웠고 국회부의장 등을 지냈다.
장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는 것에 고무됐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신문을 들며 청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몸짓을 섞어가며 화려한 언변을 뽐냈다. 40~50분 동안 계속된 그의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은 썰물처럼 흩어졌다. 순간 과거 군사독재 시절 지지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청중을 총동원하던 유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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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조 새누리당 후보가 지난 7일 아침 부산 사상구 부산도시철도 덕포역 3번 출구 앞 덕포교차로에서 출근하는 시민들한테 인사를 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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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침 8시께 손수조(31) 새누리당 후보는 부산도시철도 덕포역 3번 출구 앞 덕포교차로에서 비옷을 입고 출근하는 시민들한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건널목을 건너오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지지를 호소했다. 일부 시민은 “힘내라”고 말을 건넸고 손 후보 옆에 있던 선거운동원한테 다가가 명함을 받아갔다.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권에서 야권 후보한테 밀리고 있는 새누리당 후보의 역전을 도와주는 숨은 지지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 후보 옆에 있던 선거운동원 김아무개(52)씨는 “장 후보가 새누리당을 탈당했지만 사상구 전체 당원의 7할 정도가 장 후보를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 후보가 집중 연설하는 곳에는 자발적인 청중이 아니라 동원된 새누리당 당원과 조직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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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정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7일 낮 12시께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앞 삼락강변경로당을 찾은 어르신들에게 배식을 하면서 안부를 묻고 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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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정(48)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7일 낮 12시께 덕포시장 앞 삼락강변경로당을 찾았다. 마침 경로당엔 무료 급식이 있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중에 40여명의 어르신들이 찾았다. 배 후보는 밥솥의 밥을 떠서 어르신들께 드렸다. 배 후보가 어르신들에게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 후보가 경로당을 찾았다고 선거 때마다 기호 1번에 거의 몰표를 찍는 70대 이상이 이번엔 얼마나 야당 후보를 찍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배 후보는 직장인이 자주 찾는 식당을 찾아 인사를 한 뒤 점심을 먹고 사상농협 본점의 노래교실을 찾았다. 이어 강행군에 목이 쉬어 말하기도 힘들었지만 유세차량에 올라 골목에 다니며 인사를 했다. 선거캠프 관계자는 “참모들이 쉬라고 해도 링거를 맞고 다니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물 경쟁 구도
거리에 내걸린 펼침막 가운데는 배 후보의 것이 눈길을 끌었다. 비슷하거나 추상적인 구호를 적지 않고 지역에 맞는 구호를 적은 것이 도드라졌다. 감전동에 걸린 펼침막엔 ‘감전초등학교 출신’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장 후보는 ‘사상의 자존심을 지키겠다’, 손 후보는 ‘일 잘 하는 젊은 일꾼’ 등으로 일관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여야 대결구도로 흐르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사상구는 2여1야 구도여서 그런지 인물경쟁 구도로 흐르고 있다. 무엇보다 후보들은 저마다 검증된 일꾼임을 강조했다. 손 후보는 부산시가 500억원을 들여 전체면적 1만5000㎡규모로 2018년께 덕포동에 건립할 예정인 도서관에 대해 “서병수 시장을 만나 사상구에 건립해 달라고 요청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장 후보는 “18대 국회의원 시절 사상의 숙원사업이었던 사상~하단 도시철도를 뚝심 있게 추진해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 후보는 “19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비 599억원과 학장중·덕상초 강당 신·증축비 35억원 등 738억원의 국비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 등 뒷배경이 없다는 뜻의 ‘흙수저’와 부모의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는 뜻의 ‘금수저’ 공방도 일고 있다. 손 후보는 “나는 트럭운전사의 딸이다. 장 후보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선친의 재산과 권력을 물려받은 금수저다”고 공격했다. 장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했는데도 무소불위의 권력의 눈 밖에 나 무소속 출마한 것이 금수저냐”고 되받았다. 배 후보는 “나는 사상공단 양말공장 노동자의 딸이다. 손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입고 두 차례나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금수저고 장 후보는 대학을 설립하고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선친의 후광 덕분에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지낸 금수저”라고 싸잡아 공격했다.
손·장 후보는 4년 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사상구에서 당선된 것을 ‘잃어버린 4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전 대표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지역구인 사상구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 후보는 “문 전 대표는 지난 4년 동안 사상공업지역재생 시행계획수립용역과 첨단신발융합 허브센터 건립 등 사상 발전을 위해 929억원의 국비를 확보했다. 잃어버린 4년이 아니라 사상구 출신 역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열심히 사상을 위해 일했다”고 반박했다.
오리무중 표심
선거일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기호 1번(손수조)과 5번(장제원)을 두고 갈리고 있다. 7일 사상구청 앞에서 만난 전아무개(62)씨는 “새누리당이 공천을 잘못했다. 너무 젊은 손 후보보다는 국회의원을 해본 40대의 장 후보가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날 덕포역에서 만난 김아무개(62)씨는 “지금까지 나는 1번만 찍었어요. 손 후보는 너무 젊어서 일을 잘하겠나 싶어 불안은 하지만 장 후보는 한 번 해먹었다 아닌교”라며 손 후보 지지 뜻을 밝혔다.
여전히 1번과 5번을 두고 헷갈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상역 앞의 식당가에서 만난 60대의 남성은 “사상 발전을 생각하면 장 후보를 찍고 싶지만 박근혜 대통령한테 힘을 실어주려면 1번을 찍어야 한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 후보를 지지하던 층이 손 후보로 이동하려는 조짐이 엿보였다. 40대 주부 박아무개씨는“장 후보가 당선 뒤에 새누리당에 복당하겠다고 해서 찍어주고 싶지만 손 후보가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60대 가운데서도 유일한 야당인 배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이도 있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60대 여성은 “사상이 기호 1번만 찍는 새누리당 텃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물을 보고 뽑을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무래도 더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이하에선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많았지만 투표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사상구청 앞에서 만난 박아무개(26)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부산에서 직장을 얻었는데 근로조건이 좋지 않아 그만두고 서울로 갈 것이다. 투표를 한다면 새누리당 후보를 찍지 않겠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상구청 앞에서 만난 20대 3명도 “새누리당 후보는 무조건 찍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야당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발길을 재촉했다.
대역전 일어날까?
언론사들의 여론조사가 맞을 것인지가 관심사다. 지금까지 여러 언론사에서 8차례 여론조사를 했는데 <국제신문>이 3일 벌여 7일치 지면에 소개한 여론조사에선 후보 지지도가 장 후보 33.1%, 배 후보 26.1%, 손 후보 21.2%였다. 장 후보에 견줘 많게는 20%포인트 이상 뒤지며 2~3위를 달리던 배 후보가 처음으로 오차범위(8.8%포인트) 안인 7%포인트 차이까지 좁혔다.
다급해진 쪽은 손 후보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를 자제하던 손 후보는 7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장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장 후보 쪽은 “패색이 짙어진 손 후보의 주장일 뿐이다”며 일축했다.
앞서 지난 3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장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장 후보는 지난달 27일 평소 다니지 않던 지역구 안의 한 종교시설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는 등 올해 1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 후보 쪽은 “1위를 달리고 있는 장제원을 선택하지 않으면 또다시 (4년 전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한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선거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이 장 후보를 계속 비방하면 더민주에게 어부지리만 안겨줄 뿐이다”고 경계했다.
세 후보 쪽은 저마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배 후보 캠프 관계자는 “손·장 후보가 비슷하게 표를 가져가고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2년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각각 55%와 43%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을 근거로 들었다.
손 후보 캠프 관계자는 “장 후보 쪽으로 갔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결국 선거일에 돌아올 것이며 우리의 텃밭인 사상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역전할 것이다”고 말했다. 장 후보 캠프 관계자는 “4년 전엔 문 전 대표의 인물경쟁력이 20대의 손 후보에 견줘 월등히 높았지만 배 후보는 그렇지가 않다. 여야대결 구도가 아니라 인물론 구도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배 후보의 역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지역정가에선 대체로 배 후보가 역전하려면 두 가지 필요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공통분모로 하는 손·장 후보의 지지표가 엇비슷하게 갈라지는 것이 첫번째고, 40대 이하를 중심으로 하는 야권 지지층이 투표장으로 가는 것이 두번째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두 가지 필요조건을 채우더라도 다른 변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의 역대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계속 여론조사에서 이기다가 숨어있는 새누리당 지지표가 결집해 역전을 당했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였던 서병수 부산시장이 오거돈 무소속 후보한테 많게는 10%포인트 이상 뒤졌다가 선거일 3~4일을 앞두고 맹추격을 해 대역전극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 후보 캠프 관계자는 “장 후보의 지지도는 정체된 것으로 본다. 오히려 두려운 것은 손 후보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저력이 더 무섭다는 얘기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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