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 참패+야당 선전’으로 마무리됐다. 공천을 둘러싼 새누리당 ‘진박’-‘비박’의 정면충돌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직인 파동’,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분열과 야권연대 불발, 청와대발 ‘창조 북풍’ 등 선거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이어졌지만, 이런 정도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변을 거듭한 4·13 총선의 핵심 장면 여섯 가지를 <한겨레>가 꼽아보았다.
1. 더불어민주당 제1당 탈환…16년 만의 여소야대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얻으면서 일단은 제1당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으며 당시 한나라당(121석)을 따돌리고 1당이 된 지 12년 만이다.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과반 의석이 무너지며 참패했다.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제3당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로써 16대 국회(2000~2004년)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제1당은 곧 바뀔 가능성이 크다.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유승민(대구 동을), 윤상현(인천 남을) 등 새누리당 출신 당선자가 7명(장제원·주호영·안상수·강길부·이철규)에 달한다. 대부분 복당 의사가 확고하다. 반면 더민주당 출신 공천불복 무소속 당선자는 이해찬(세종시)·홍의락(대구 북을) 당선자 둘뿐이다.
2. ‘선거의 여왕’의 첫 패배…레임덕의 시작?
‘선거의 여왕’ 박근혜 효과는 없었다. 17대 총선 이후 등판한 각종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고배를 마셨다. 박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정권 운영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박 대통령은 격전지로 꼽히는 지역들을 방문한 데 이어 “국민들이 투표로 새로운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까지 말했다. ‘노골적 선거 개입’이라는 비난을 샀다. 새누리당의 친박 핵심들은 박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공개 등 청와대발 신종 ‘창조 북풍’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경제실정’도 원인으로 꼽는다. 전문가들은 ‘보수=경제+안보를 잘한다’는 인식도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야당이 국회 권력의 주도권을 점한 데 더해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번 총선 결과를 ‘정권심판론’으로 인식해 청와대와 거리두기 또는 각 세우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임기를 2년 남겨둔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3. 지역불문! 집토끼들의 반란!
영호남, 서울 수도권 할 것이 ‘집토끼’들이 가출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당선자 중 한 명인 김부겸(수성갑) 후보는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꺾고 31년 만에 새누리당의 아성 대구에 입성했다. 더민주 탈당파인 홍의락(북을) 후보도 대구에 깃발을 꽂았다. 전통적인 새누리당 텃밭인 ‘낙동강벨트’에서도 야풍이 거셌다. 더민주당의 김영춘(부산진갑), 최인호(사하갑), 전재수(북강서갑), 김해영(연제), 김경수(경남 김해을), 민홍철(경남 김해갑), 서형수(경남 양산을) 후보가 배지를 달게 됐다. 노동자 밀집지역이지만 지난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의석을 내줬던 경남 창원성산에서도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당선됐다.
반면 더민주당의 버팀목이었던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이 전체 28석 중 23석을 가져가 대폭 물갈이됐다. 새누리당 이정현(순천) 후보는 ‘적진’ 호남에서 2선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서도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당선됐다.
서울에서는 ‘수도권 보수의 아성’ 강남의 벽이 무너졌다. 전현희 더민주당 후보가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를 누르고 강남을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강북의 강남이라 불리는 서울 용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온 진영 후보가 당선됐다.
4. 철수 안 해도 되는 안철수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며 야권통합을 거부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대권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더민주당의 구태 정치·계파 정치를 비판하며 지난해 말 돌연 탈당 뒤 창당한 안 대표는 더민주당으로선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였다. 야권의 참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야권 통합을 완강히 거부하자 야권에서는 안 대표가 새누리당이 압승할 경우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적표를 받아든 안 대표는 국민의당을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앉히고 캐스팅보트를 거머쥐었다.
5. ‘피닉제’도 끝…날개 꺾인 거물들
새누리당의 대권 잠룡들, 5·6선 거물들이 대거 떨어졌다.
13대 국회에 입성한 뒤 불패의 신화를 쓰며 ‘불사조’ 또는 ‘피닉제’(phoenix+이인제)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6선의 이인제 후보는 더민주당 김종민 후보와 접전 끝에 1038표 차로 패배했다.
‘무상급식’에 맞서다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던 오세훈 후보는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재기 꿈꿨으나, 더민주당 정세균 후보에 밀렸다. 당선시 유력한 새누리당 대권 후보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또 다른 잠룡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대구에서 김부겸 당선자에게 패하며 정치 생명에 빨간불이 켜졌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밀려 무소속 출마했던 이재오 후보는 5선을 지낸 서울 은평을을 더민주당 강병원 당선자에게 발목을 잡혔다.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5선의 황우여(인천 서을) 후보도 더민주당 신동근 당선자에게 패해 6선 도전에 실패했다.
6. 진보정치, 명맥은 살렸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13석을 가져가며 일으켰던 ‘진보 바람’은 이번 선거에서 불지 않았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새누리당이 17석,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13석씩 차지해 정의당은 남은 4석을 얻는데 그쳤다. 민중연합당, 노동당, 녹색당은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도 진보정치의 명맥은 이어갔다. 심상정(경기 고양갑) 정의당 대표와 노회찬(경남 창원성산) 후보가 나란히 진보정당이 배출한 첫 3선 의원이 됐다.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도 통합진보당 출신 무소속 윤종오(북구) 후보와 김종훈(동구)가 각각 새누리당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며 당선됐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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