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4·13 총선 당선자들과 서울현충원을 참배하러 온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한 전현희 후보를 업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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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이후 민심 르포
여당 불패 무너진 강남·분당
“국회의원 한 번 바꾼다고 뭔 나라가 뒤집혀.” 박아무개(73) 할머니는 총선 다음날인 14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주공1단지아파트 들머리에서 ‘나라가 뒤집혔다’고 삼삼오오 모여 걱정을 하던 동네 친구 할머니들에게 타박을 놓고는 손자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길을 재촉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곤 그동안 줄곧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온 박 할머니는 이번 총선에선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새누리당 놈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게 싫더라고. 바꿔야 돼. 이번에 정신차리면 다음엔 찍어주겠지만.”
20대 총선 정당득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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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공천과정 서로 물고 뜯어
용납할수 있는 한계 넘었다” 세대구성 변화 강남을·분당갑 젊은층 증가
“보수정권 8년 아무 변화 없어
생활 보탬주는 정당에 기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송파병 지역 주민들에게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오후 송파구 장지동 송파파인타운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던 서춘만(58)씨는 “총선 전 새누리당이 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진박’이라고 홍보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사람이면 다 되는 줄 알더라.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거지”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서씨 또한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을 찍어,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국민의당 이동 현상을 보여줬다. 이곳 송파병 지역은 강남에서도 야권 성향이 강하긴 하다. 호남 출신 주민들이 많고, 거여·마천·오금·장지동 등 서울의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강남3구 가운데 서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 하지만 지난 19대 총선에서 김을동 의원이 당선됐고 이번 총선에서도 선거일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는 굳건해 보였다.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는 민심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무공천 지역이 된 송파을도 마찬가지다. 석촌동에 거주하는 김아무개(43)씨는 “지역 어르신들 중에서도 새누리당의 불협화음에 불쾌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 개인적으론 소통 안 되는 박근혜 정부를 보호하려 하는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으로 최명길 더민주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거주하는 세대 구성이 바뀌고 있는 점도 강남 민심의 변화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남을은 입주가 진행 중인 세곡동 보금자리주택 단지에 젊은 부부들이 대거 입주한 점이 지역의 평균 성향을 가운데로 이동시키고 있다. 분당갑의 경우 1990년대 고도성장의 틀에서 자라난 청소년 세대가 청장년층으로 성장해 분당에 뿌리를 박았는데, 이 세대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펼친 정책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는 분석이다. 더민주는 게임업체 웹젠의 이사회 의장 출신 벤처기업인인 김병관(43) 후보를 냈다. 박탈감을 느끼는 주민들과 비슷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인물이다. 수내동 주민 문아무개(54)씨는 “새누리당이 뭔가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지지를 해왔지만, 이명박 정권을 포함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계속 이들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말을 갈아탔다”고 말했다. 지역의 ‘실리’도 또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한 듯하다. 강남을에서는 김종훈 의원이 해결하지 못한 세곡동의 교통문제를 전현희 후보가 같은 당의 박원순 시장과 함께 바꾸겠다며 나선 것이 표심을 자극했다는 분석 글이 부동산 인터넷 카페에 속속 올라왔다. 분당을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후보를 선택했다는 금곡동 주민 이아무개(64·여)씨는 “이번 총선에 이명박 정부 실세 임태희씨도 무소속으로 나오고 새누리당의 ‘친박’ 전하진씨도 나왔지만, 그 누구도 생활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 좀더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정당에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재욱 기자, 성남/김기성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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