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3.14 19:56 수정 : 2016.09.07 15:30

kimyh@hani.co.kr

심리상담실이 위험하다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성관계 요구
“거절하면 치료중단” 수차례 협박
내담자 “버림받을까” 공포에 발작도

불평등 권력관계 이용한 범죄로
성관계 피해 뒤 심각한 후유증

미국, 상담사 성적 접촉 엄격처벌
국내엔 적용할 현행법 없어
경찰·검찰도 처벌하기 어려워

심리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내담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 이아무개, 정아무개씨가 유명 심리상담가인 ㅁ아무개 ㅁ심리 클리닉 대표를 고소한 사건이 제기하는 논점이다. 우리 사회에선 공론화되지 않았던 낯선 사안이다. 사건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고소인들은 상담소 내 불평등한 권력 관계와 내담자의 특수한 심리상태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성관계는 사실상 강제적 행위로 봐야한다며, 엄격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신적 약점을 악용한 폭력” 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 새어머니는 작은 잘못에도 걸핏하면 매를 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정씨는 불안과 우울 증세로 자주 직장을 옮겨다녀야 했다. 다니던 병원 의사의 권유로 2013년 9월 문제의 ㅁ클리닉을 찾았다. 여기서 만난 ㅁ 대표는 1년반 동안의 분석을 통해 정씨의 정신적 취약점을 모두 파악했다. 학대를 일삼는 새엄마보다는 방임하는 아빠에게서 상대적 안정감을 느꼈던 정씨는 어느날 상담실에서 ㅁ 대표가 갑자기 성관계를 요구했을 때 저항하지 못했다. ㅁ 대표는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치료를 중단하고 정씨를 “버리겠다”는 암시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정씨는 ㅁ 대표의 요구대로 몇달 동안 ㅁ 대표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표면적으론 동거에 ‘합의’했지만 내적으론 ‘감금’ 상태였다고 정씨는 주장한다. 정씨는 어린 시절 감금당했던 기억과 말을 듣지 않으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겹쳐 공황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ㅁ 대표는 정씨에게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쓰리섬’(셋이서 성관계를 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ㅁ 대표는 평소 내담자들에게 “정신분석의 윤리는 따로 있다” “여기는 교회처럼 진리를 실험하는 장소”고 말했다고 한다. 그에게서 상담을 받은 다른 내담자는 “내담자 그룹 사이에서 그는 교주 같았다”고 했다. 이들 중 한 내담자는 ㅁ클리닉에 수천만원 어치의 선물을 하기도 했다. 정씨와 함께 ㅁ 대표를 고소한 이아무개씨는 “팔이 부러졌을 때도 ㅁ 대표가 시키는대로 그의 집에 가서 식모처럼 수발을 들었다”고 말했다.

■ 심리적 권력관계의 덫 미국의 린다 조르겐슨 박사 등은 내담자가 상담가에게 극도의 의존 상태가 되는 이유를 3가지로 꼽는다. 첫째, 효과적 심리치료를 위해 내담자는 상담자를 무한히 신뢰한다. 둘째, 내담자는 자신의 취약점을 모두 털어놓기 때문에 상담실에선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성립한다. 셋째, 심리치료의 중요 단계인 ‘전이’가 의존을 더욱 강화한다. 모든 심리 분석은 내담자가 상담자를 부모 등으로 여기며 그간 쌓아온 분노나 증오를 분출하거나 결핍된 사랑을 채우려는 전이 과정을 거친다. 1986년 미국 한 지방법원은 “상담자에게 부모 관계를 투사하며 치료를 받던 중 상담자와 성관계를 하게 된 여성은 근친상간 피해자와 같은 정도의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 상담실 성관계의 후유증 미국심리학회(APA)의 윤리위원장으로 일했던 케네스 포페 박사는 상담자와 성적 관계를 맺으면 내담자들이 인지적 기능 장해, 불안, 공허함과 소외감, 죄책감 등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보우 토우소스 박사는 1983년 연구에서 상담자와 성관계를 맺은 내담자의 11%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정신적 붕괴 상태를 경험했으며, 1%의 내담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실제 이번 사건에서 내담자 정씨는 공황발작을 일으킨 다음 ㅁ 대표의 집에서 ‘탈출’했으나 이후 계속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씨를 치료 중인 상담사는 “정씨가 이전 상담가와의 경험 직후 자살충동, 대인공포증 등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다른 고소인인 이씨도 ㅁ 대표가 성관계 동영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고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 미국은 중범죄로 처벌 미국에선 1970년대 중반 이후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상담가-내담자 사이 힘의 불균형 관계가 드러나자, 뉴욕주 등 23개 주가 내담자와 성적 접촉을 가진 심리상담사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규정을 마련했다. 특히 이들 23개 주 대부분은 내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거나 성관계에 동의했더라도 상담사를 처벌한다.

반면 한국은 관련 법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경찰은 ㅁ 대표에 대한 법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말 ㅁ 대표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하고, 경찰이 동영상 유포 등을 우려해 압수한 휴대폰도 돌려주도록 했다. 상담실 권력관계에 따른 강압 가능성 등은 외면한 채 표면적 ‘합의’ 여부에만 주목한 때문이다. 반면, 정씨는 “ㅁ 대표 휴대폰 동영상 속 여성이 4~5명이나 돼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용산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관계자는 “윤리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안이지만 현행법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담실에 설치된 시시티브이와 휴대폰에 동영상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ㅁ 대표는 경찰에서 “합의하에 교제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모든 것은 경찰 수사에서 밝히겠다.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관련기사
▶심리상담실이 위험하다
▶상담사 관리 사각지대…국가자격증도 없어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