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군 계모 “남편과 단둘이 행복하게 살려고 범행”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한 빌라에서 진행된 신원영군 학대 사망사건 현장검증에서 시민들이 락스를 들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e-mail]

잔혹하게 학대한 계모와 친부 둘다 살인죄 적용

7살짜리 아들 신원영군을 끔찍하게 학대하다 숨지게 한 계모 김아무개(38)씨와 아버지 신아무개(38)씨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됐다. 원영군이 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도 끊임없는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씨는 ‘남편과 단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잔혹한 범행을 일삼았고, 신씨는 김씨와 갈등을 피하고 혼인을 유지하기 위해 학대 받는 아들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평택경찰서는 16일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들 부부에게 살인과 사체유기, 아동복지법 위반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해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원영이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수시로 폭행하고, 발코니에 가둔 채 식사를 하게 하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2일까지 3개월여 동안은 화장실에 가두고 밥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학대하다가, 지난달 1일 오후 1시께 옷에 대변을 봤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찬물을 뿌린 뒤 방치해 다음날 숨지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어 김씨는 지난달 2일 오전 9시30분께 원영군이 숨진 사실을 알게 되자, 신씨와 함께 주검을 발코니에 열흘 동안 방치했다가 같은 달 12일 오후 11시25분께 청북면 야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씨는 김씨의 학대 행위를 알면서도 부부갈등을 피하고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아동학대로 처벌 받을까 우려해 아들을 구호하지 않고 방치해 결국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김씨는 원영군을 화장실에 가둔 뒤 1월28일 변기 밖에 소변을 흘렸다는 이유로 주먹 등으로 폭행했고, 원영군이 이를 피하려다 넘어지면서 변기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 이틀 뒤인 30일 오후 8시께 신씨와 다툰 뒤 ‘화가 난다’는 이유로 화장실 안에서 긴팔 운동복과 팬티만 입고 있던 원영군을 무릎 꿇리고 락스 1ℓ를 부었고, 4시간여 뒤 또다시 1ℓ짜리 락스를 부어 학대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원영군의 주검에서는 피부 일부가 괴사되고 섬유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원영군을 학대하면서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7개월 동안 한 모바일 게임 아이템 구입을 위해 6000여만원을 쓰는 등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부부는 혹시 모를 경찰 수사에 대비해 뻔뻔한 범행 은폐 시도를 했다. 신씨는 원영이가 숨진 다음 날(2월3일) 김씨에게 “여보 원영이 잘 놀지”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김씨는 “응 아침 잘 먹고 양치하고 있어”라고 답했다. 다음 날(2월4일)에는 문자메시지로 “여보 밥먹었어”라고 신씨가 묻자, 김씨는 “난 원영이랑 김치볶음밥이랑 칼국수 시켜먹었어”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들은 원영군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책가방과 신발 주머니를 구입했다. 또 지난 1월 중순 초등학교에 입학유예신청을 해놓은 뒤 이달 3일 학교 쪽이 “의무교육관리심사위원회에 아이를 데리고 참석해 달라”고 연락해 오자, 차량 블랙박스 앞에서 “원영이 말 잘 듣고 있으려나 몰라”라며 거짓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김씨가 원영군을 강원도에 있는 지인 집에 보낸 것으로 말을 맞춰놓은 상태였다.

경찰은 지난 4일 원영군이 입학할 예정이던 초등학교 쪽으로부터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 수사에 들어갔다. 원영군 누나(10)로부터 김씨가 장기간 폭행과 학대를 해왔다는 진술을 입수한 경찰은 바로 이들 부부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던 중 지난 7일 인근 호텔에 투숙한 이들을 체포했다.

체포 당시 김씨는 “지난달 19일부터 24일 사이 아이가 가출했다”고 했다가 “지난달 20일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버리고 왔다.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수백명의 경력을 동원해 평택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친아버지 신씨는 ‘원영이 사망 2∼3일 전 이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죽기 며칠 전 잘못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락스를 뿌린 이후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두 피의자 모두 사망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으며, 원영이가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락스·찬물 학대라는 점에서 이후 마땅히 해야 할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으로 결론냈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원영군의 사망 원인은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출혈, 저체온증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평택/김기성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