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23 19:32
수정 : 2016.03.2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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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연쇄 테러가 발생한 벨기에 수도 브뤼셀 시내의 부르스 광장에서 두 시민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놓인 촛불을 바라보며 서로 끌어안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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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 테러 거듭되면서
외국인에 노골적 적대감 빚어
이주장벽 높아질까 우려
NYT “EU 통합까지도 위협”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년)에서 갈파했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전체주의를 비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방법론으로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차갑게 비판한 이 책을 우파들이 가장 먼저 반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 합리적 비판과 반증 가능성의 중요함을 강조한 고전으로 주목받았다.
23일 유럽연합(EU)의 심장인 벨기에 브뤼셀을 강타한 연쇄테러가 유럽연합의 ‘열린 사회’를 중대한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가까이는 지난해 11월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를 비롯해 거듭되는 극단주의 테러가, 다른 한편으론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극우세력의 노골적 적대감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어서다. 이번 테러를 계기로 유럽이 난민과 이주자에 대한 장벽을 더욱 높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22일(현지시각) 벨기에의 안보 실패가 유럽인의 생명 뿐 아니라 유럽연합의 통합까지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경 없는 대륙’을 표방한 유럽이 테러 네트워크에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일국의 테러 대응 실패가 전 유럽으로 증폭되는 치명적 역설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마이치에레 독일 내무장관은 “브뤼셀 테러가 유럽연합 기구들과 가까운 지하철역과 국제공항을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단순히 벨기에가 아니라 유럽의 자유와 이동권, 나아가 모든 유럽인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벨기에 치안 당국은 수개월 동안 용의자 거주지역을 샅샅이 훑었다. 브뤼셀 테러가 나기 불과 나흘 전에는 파리 테러 주범들 중 유일한 생존자를 체포했다. 그럼에도 이번 테러를 막지는 못했다. 벨기에는 프랑스권·독일권·네덜란드권으로 분열돼 중앙정부의 권한이 약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포조직이 깊숙이 똬리를 틀었으며, 정보기관들이 고질적인 불협화음을 내는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실패 국가’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유럽인들은 테러 예방과 열린 사회를 동시에 실현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곤혹스럽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테러가 유럽 사회에 시민적 자유의 침해를 감수해가며 안보 조처를 대폭 강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테러가 ‘열린 유럽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상의 일부라고 여겨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과제를 던졌다고 평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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