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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17 17:14 수정 : 2016.04.17 19:40

16일 오후 두번의 강진이 강타한 구마모토현 오쓰마치 부근 도로. 지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스팔트에 균열이 나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르포] 일본 구마모토 지진참사 현장
7.3 강진에 사상자 속출…수만명 이재민
자위대원 2천여명 투입 행불자 수색작업
기상청 “언제 또 지진 날지 예측 어려워”
90살 할머니 “내 평생 이런 지진은 처음”

“오늘은 여기서 잘 거예요. 피난소에 사람이 너무 많네요.”

지난 16일 밤 7시, 연쇄 지진이 강타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지진의 영향으로 정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28번 현도가 패이고 갈라져 취재진을 태운 차량은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주요 교차로마다 배치된 경찰과 자위대원들은 빨간 교통봉을 흔들며, 운전자들에게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다카모토 다에코(60) 가족을 태운 차량은 왕복 2차로인 28번 현도변에 쓸쓸히 주차돼 있었다. 예상치 못한 지진이 터진 뒤 다카모토 부부의 자동차 생활은 벌써 사흘째다.

“여기예요. 여기가 우리 가게.”

16일 오후 오쓰마치의 한 민가가 지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주저 앉았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6일 오후 오쓰마치에서 반쯤 부서진 민가. 주민 다케시타(67)가 오늘 밤을 지샐 장소를 찾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6일 오후 구마모토시내. 일본 서민들이 애용하는 소고기 덮밥 집 요시노야 주변에 건물 파편이 널려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6일 밤 구마모토 시내. 편의점의 식료품이 텅텅 비어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다카모토의 차량이 주차된 곳은 그가 남편과 함께 운영해 온 이발소 앞이었다. 25년 전 지었다는 부부의 자택 겸 이발소는 마을을 강타한 두번의 강진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무너져 내렸다. 그는 “지진이 한번 더 오면 건물이 주저 앉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님 걱정에 후쿠오카에서 달려왔다는 큰 아들이 대형 후레쉬를 들고 차량 곁을 지키고 있다.

14일 오후 9시26분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6.5의 첫 지진 이후, 후속 지진이 주변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중이다. 첫 지진 뒤 28시간 만인 16일 오전 1시25분 1995년 ‘한신 대지진’과 비슷한 규모의 지진(규모 7.3)이 터졌다. 그 뒤에도 여진은 동쪽 오이타현, 서남쪽 야쓰시로시와 우키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오키 겐 기상청 지진쓰나미감시과장은 “언제, 어떤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지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다. 지진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니 강한 진동에 경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이 일본에 파멸적인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아소산의 분화’와 ‘남해 판 지진’(일본 시코쿠 아래쪽 해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지진. 이 지진이 발생하면 32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의 전조가 아니냐는 종말론적 예측마저 제기되는 중이다. 첫 지진 이후 17일 오전 10시까지 무려 410번의 여진이 이어졌다.

16일 새벽 대지진은 아소산 중턱 미나미아소무라를 강타했다. 이 지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아소산 일부 능선이 무너져 내리며 마을의 간선도로인 아소 대교를 덮쳤다. 취재진은 16일 오후 국도 57호선을 타고 서진해 마을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20㎞ 앞 오쓰무라 부근에서 제지당하고 말았다. 현장 경찰관은 “아소대교가 산사태로 무너졌다. 반대쪽의 다와라야마 터널이 있지만, 그것마저 붕괴됐다”고 말했다. 마을에선 2000여명의 자위대원이 투입돼 11명의 행방불명자를 찾는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취재팀은 2번째 목적지인 마시키마치로 접어들었지만, 해가 진데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도로 사정 탓에 더 이상의 근접 취재를 포기해야 했다.

16일 밤 구마모토 시청사 앞. 주변 시민들이 시청사로 몰려들어 시청사가 대피소처럼 쓰이고 있다. 재해파견이란 글자를 단 자위대 차량이 눈에 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7일 오전 마시키마치. 뒤편에 무너진 건물 더미가 보인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6일 오후 구마모초 시청사 앞. 수도국에서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7일 오전 마시키마치.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노다 히로아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17일 오전 다시 찾은 마시키마치에서 만난 노다 히로아키(56)도 이날 집 앞 주차장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그는 “첫번째 지진이 잦아든 뒤, 짐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와 있던 이들이 두번째 지진으로 많이 희생됐다. 이 작은 마을에서 무려 20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니시무라 마사토시(88)와 미치코(82) 부부는 16일 자택에서 잠을 자다 집이 무너져 숨지고 말았다. 건물이 무너질 때 한 집에 있던 손자 요스케(38)는 건물 잔해를 헤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6시간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사고 직후) ‘아파, 움직이지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잊지 못하겠다”며 울었다.

주변에 사는 야마우치 유미코(92)도 무너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딸(68)은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가부키와 시대극을 좋아했다. 14일 지진을 이겨내서 괜찮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구마모토현 경찰은 지금까지 숨진 41명 가운데 20명이 건물에 깔려 압사했고 11명이 깔린 잔해 아래서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했다고 밝혔다.

장기화되는 지진 속에서 주민들은 동요하는 중이다. 마시키마치 정사무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종합체육관엔 1000여명의 피난민들이 모여 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후지모토 다다카즈(39)는 부인과 4살 아들, 2살 딸과 피난소에서 밤을 보냈다. 그는 “첫날은 집 앞 주차장에서 지냈지만, 비도 오고 아이들도 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첫날엔 식량이 많았지만, 물자가 잘 도착하지 않는지 어제 밤엔 2시간을 기다려 미소시루(된장국) 한 그릇을 먹었다”고 말했다.

절박한 식량난 탓인지 주민들은 오니기리(주먹밥)를 받기 위해 아침 6시30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쌀을 씻어 주먹밥을 만들던 자위대원 마쓰모토는 “쌀이 부족하다. 한 사람에 2개씩 400명 분의 오니기리를 준비하는 중이다. 첫날엔 (주먹밥에) 우메보시(일본식 매실 짱아찌)라도 넣었는데 지금은 그냥 맨밥”이라고 말했다.

하루 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차 안에서 밤을 보내거나 좁아 터진 피난소로 몰려들고 있었다. 피난소와 구호물자가 모두 부족해 고통스런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1000여명의 피난민들이 모인 종합체육관의 간이 화장실은 25개 뿐이다. 강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9만1000명이나 되는 주민들의 대피가 장가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집이 무너져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장기 이재민이다. 노다는 “이곳에 집을 짓고 100년은 살 줄 알았는데,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국가에서) 가설주택이라도 지어주지 않으면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마시키마치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IMAGE11%%][%%IMAGE12%%]17일 날이 밝은 23번 현도 주변은 일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이날 취재진에게 “평생 이런 지진은 처음 봤다”는 증언을 해준 모리시마 하야코(90) 할머니가 피난해 있던 미용실 옆으로 세탁소, 돼지덮밥 식당, 모자 가게가 이어지고, 건너편엔 후쿠나가 주점, 담배가게, 마시키 카메라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미 무너져 제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건물들이었다. 평범하게 거리를 걷는 순간에도 끔찍한 여진이 이어지고, 2~3분이 지나면 어김 없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을 통해 지진 속보가 이어진다. 일본 방송들은 지진 속보와 구마모토를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온정의 손길을 번갈아 소개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시키마치·오쓰마치·구마모토시(구마모토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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