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18 19:33
수정 : 2016.04.1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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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특파원 구마모토 지진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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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특파원 구마모토 지진현장을 가다
피해 가장 컸던 미나미아소무라
길도 차량도 끊겨 시내진입 어려워
기반 약해져 또 산사태 올까 ‘공포’
민가 덮친 산사태로 아직 8명 ‘행불’
자위대 200명 투입 구조작업 혼신
“피난민들, 화장실 부족 물도 안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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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일본 구마모토현 고쿠후고등학교 운동장에 ‘종이(화장지를 의미), 빵, SOS, 물, 고쿠후’라는 문자 모양으로 의자가 배열돼 있다. 구마모토현에서는 지난 14일부터 연쇄 지진으로 많은 주민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고쿠후고등학교도 피난소로 사용되고 있다. 구마모토/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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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엔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18일 아침 8시, 일본 국도 325호선을 타고 서행하던 취재진의 차량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지난 16일 새벽 이 지역을 덮친 규모 7.3의 강진으로 구마모토 시내와 미나미아소무라를 잇는 아소대교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리가 있던 곳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다리를 지나면 국도 57호선과 만나 구마모토 시내나 오이타현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교통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14일 밤 시작된 지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는 겉보기엔 평온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마을 북쪽엔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 거대 화산인 아소산이 솟아 있고, 서쪽엔 구로카와, 남쪽엔 시라카와라는 두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마을이 산과 두 개의 강이 만든 깊은 계곡 사이에 포위된 모습이어서 갑자기 몰아칠 수 있는 산사태에 취약해 보였다. 흔적만 남은 다리의 마지막 언저리까지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이따금 이어지는 여진에 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날 새벽 미나미아소무라로 진입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새벽 5시 구마모토시에서 출발한 취재진은 현도 28호선을 따라 동진해 마을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을을 17㎞ 남겨두고 경찰이 “이 길 연장선상에 있는 다와라야마 터널이 붕괴돼 갈 수 없다”고 막았다. 결국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해발 1086m의 지장고개를 넘는 좁은 산악도로를 따라 겨우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소대교 주변에서 만난 한 여성(58)은 “예전 한신 대지진보다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효고현 고베시를 강타한 한신 대지진이 터졌던 1995년 효고현에 있었다. 그는 “지진이 나면서 유리창이 모두 깨지는 바람에 정말 무서워 아수라장이 된 집을 놔두고 혼자 튀어나왔다”며 “어제부터 자위대가 들어와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마을이 언제 다시 정상화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산사태가 민가와 숙박시설을 덮친 탓에 미나미아소무라에선 아직 8명이 행방불명 상태다. 나카노지구 부근에선 17일 아침부터 200명의 자위대원이 투입돼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카노지구의 숙박시설인 ‘로그산장 불의 새’ 부근에 수색이 집중됐다. 이 시설의 숙박동과 레스토랑 건물은 16일 새벽 산사태에 파묻혔다. 가가와현 출신 40대 남녀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곳엔 혼슈의 야마구치현에서 파견되어 온 육상자위대 17보통과연대 대원들이 포클레인과 삽 등으로 구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기와라 히로노리(25) 3등육위(육군 소위)는 “쓸려온 흙의 양이 너무 많아 힘들다. 목재 사이에 틈이 있을 수 있어 생존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밀한 단서를 놓치지 않고 행방불명자들을 꼭 구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피난민은 20만명으로 추산된다. 주민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크고 작은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 간이화장실도 부족하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주민들이 화장실 이용을 피하려고 물을 마시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미나미아소무라의 상황은 다른 곳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오카 가쓰에(41)는 지난 17일 밤을 미나미아소무라 관광안내소가 있는 캠핑장에서 보냈다. 그는 “등산전문점에서 텐트와 침낭을 빌려줘 큰 어려움 없이 잠들 수 있었다. 하루에 세 끼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전문점 앞에선 ‘아웃도어 의원대(義援隊)’란 모임이 피난민들을 위해 휴지·물티슈·컵라면·식수·과자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 지역의 치안은 오카야마현에서 파견 나온 경찰이, 현장 복구는 히로시마의 13여단 병력이 투입돼 담당하고 있다. 극심한 혼란은 이어지고 있지만, 조금씩 문제 해결의 갈피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미나미아소무라(구마모토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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