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28 19:42
수정 : 2016.04.20 09:49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4년째 수사중
피해자·가족 2012년부터 4차례 고소
“검찰 소극적 수사로 고통의 나날”
검찰, 역학조사 기다리며 수사중단도
최근에야 업체 압수수색 등 나서
업체과실·폐손상 인과관계 등 가려야
“어떤 이유를 갖다 대든, 아직도 수사중이라는 것은 국가의 잘못이다.”(검찰 관계자)
2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고소 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수사 단계에 머물면서, 검찰의 초기 판단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형사 고소를 4차례 하고, 지난 24일에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무기한 1인시위에 들어갔다.
■ 4년간 수사중, 왜? 가습기 사용 피해자들이 사건을 검찰에 고소한 것은 2012년 8월이다. 사망자 9명의 유가족 등이 홈플러스·롯데마트·옥시레킷벤키저 등 살균제를 생산·유통·판매한 10개 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당시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집계한 사망자 수는 52명이었다. 그러나 2013년 3월 수사가 돌연 중단된다. 사망 원인에 대한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검찰이 기소를 중지한 것이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2014년 3월 “361명의 피해자 중 104명이 사망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수사는 멈춰 선다.
피해자 및 가족들은 2014년 8월 2차 고소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물질을 생산한 에스케이(SK)케미칼 등 5개 업체를 추가 고소하고, 적용 혐의도 과실치사에서 살인죄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2차 고소는 고소 내용 보완과 더불어 수사당국의 빠른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더디게 진행되던 수사는, 다시 1년여가 흐른 지난해 8월 경찰이 피고소 업체 15개 중 옥시레킷벤키저 등 8개 업체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면서 일차 매듭을 짓는다. 고소 3년여 만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건네받은 검찰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보고, 여전히 수사를 진행중이다. 그동안 업체들은 불리한 증거를 없애고, 방어 논리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가족들은 지난해 11월과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에 3·4차 고소를 했다. 2012년 첫 고소에 참여한 사망자 가족 안성우(40)씨는 “4년간 고소인 조사를 두 차례 받았는데, 2012년 조사 때는 신원만 확인한 수준이었다”며 “검찰이 수사를 소극적으로 진행하는 동안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2012년 첫 고소를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2부에 배당하고, 서울 강남경찰서에 수사를 맡겼다. 피해자가 수백명에 이르고, 업체 10여곳과 국가의 과실까지 가려야 할 사건을 사실상 검사 1명에게 맡긴 셈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형사부는 검사 한 명이 처리하는 고소 사건만 한달에 200~300건에 이른다. 이런 성격과 규모의 사건이라면 팀을 꾸리거나, 특수부처럼 하나의 수사에 전념할 수 있는 곳에 맡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소극적인 대응은 다른 대규모 사망 사건과도 비교된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의 경우 검찰은 사건 발생 하루 만인 2014년 4월17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5월15일 승무원 전원을 구속 기소했다. 2014년 10월 환풍구 붕괴로 사망자 16명이 발생한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사건의 경우 사건 이듬해 3월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가 이뤄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2012년 당시는 사건 상황이 지금과 달랐다. (형사2부 배당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며 “올해 1월 6명의 검사로 전담 수사팀을 꾸렸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무엇을 밝혀야 하나? 최근 살균제 제조·유통 업체를 두 차례 압수수색하고 피해자를 불러 조사하는 등 적극 수사에 나선 검찰 앞에는 제조 업체의 과실 여부,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 등을 가려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옥시레킷벤키저 등 살균제 제조·유통 업체들은 ‘살균제가 폐 손상을 불러왔다’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고 기간도 3개월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다. 검찰은 환경보건 전문가 등과 함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업체들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100명의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물론 15명과 22명의 사망자를 낸 홈플러스나 롯데마트도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알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살균제 원료를 만들어 판 에스케이케미칼은 2013년 낸 보도자료에서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거래처에 나갈 때, 물질의 위험성을 적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함께 전달된다”며 “이 자료를 본다면 물질의 유해성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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