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들이 1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피해 시민들의 제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가습기 살균제’ 5년만에 사과
검찰, 고의 여부에 수사 초점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과실치사죄’
4개 판매·제조업체 관계자 곧 소환
역학조사 결과 기다린다며 방치
고소한 지 4년 지나 뒤늦게 수사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에 가습기살균제피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을 꾸린 검찰은 석달여 동안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4개사가 출시한 제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 이들 4곳의 고의나 과실 여부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업체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기 전에 인체 유해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여부다. 2001년 가습기살균제에 유독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처음 사용한 옥시는 사전에 유해성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옥시는 자사 누리집에 소비자들이 올린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하는 글을 일부러 지운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옥시가 동물 실험 등을 통해 제품의 유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도 제품을 출시하거나 계속 판매했다면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 검찰은 아직 관련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이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해 사람이 죽었을 때 적용하는 죄다.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업체들이 제품의 유해성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 2월 압수수색 과정에서 옥시가 제품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동물 실험의 필요성 등을 논의한 내부 문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9일부터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전·현직 임직원을 소환해 유해성 사전 인지 여부 등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선다.
옥시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실험 보고서의 조작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옥시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공론화된 뒤인 2012년 서울대와 호서대에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한 실험을 맡겼다.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옥시가 실험 환경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도록 하고 실험 결과도 왜곡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은 두 대학 교수들이 옥시로부터 비정상적 방법으로 1000만원 가량의 돈을 받은 정황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검찰이 애초 늦게 수사에 착수하는 바람에 증거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의혹이 불거지자 피해자들은 2012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옥시 등을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보건복지부의 역학 조사 결과를 기다린다며 1년 동안 기소 중지하고 이후에도 검사 1명에게 사건을 맡기는 등 사실상 올해 1월까지 방치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2012년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관련 영상] '가습기 살균제 피해' 성준이의 희망/ 한겨레포커스(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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