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1 13:18
수정 : 2016.04.2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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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신천동 한국광고문화회관 앞에서 피해자 개별 민사소송이 아닌 ‘소비자·기업 피해 대책협의회 구성을 통한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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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만 쫓느라 안전문제 외면” 시인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수사 협조해야”
“과도한 비용 절감과 안전불감증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
독성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해 1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직원 ㄱ씨는 20일 <한겨레>와 2시간가량 전화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원인을 진단했다. 옥시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온 고참 직원 ㄱ씨는 옥시가 2001년 영국계 다국적회사인 레킷벤키저로 인수된 뒤 사회적 책임보다 수익을 최우선시하는 쪽으로 경영 방향이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태에서 나타난 옥시의 ‘불통’도 이런 경영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봤다.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불거진 2011년 이후 회사 운영을 법무팀 중심으로 바꾸고 대형 로펌에 의존한 채 언론 취재에도 거의 응하지 않고 있다. 옥시연구소 직원들이 제조 당시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고, 이를 과소평가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ㄱ씨는 “회사가 피해자분들에게 확실히 사과하고, 회사 차원에서 사태의 원인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옥시가 출시한 가습기살균제로 많은 사람이 심각한 피해를 봤다.
“가습기살균제는 옥시가 만드는 300여개 제품 중 하나였다.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빛화학에서 오이엠(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만들었다. 매출액도 10억~2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전체 매출의 1%가 안 된다. 2001년 가습기살균제를 만들면서 안전성에 크게 신경을 안 썼다.”
-2001년 왜 독성 가습기살균제가 만들어지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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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가습기살균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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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부터 옥시는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았다. 그때는 원료가 독성 물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는 늘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 관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생산단가를 낮출 계획을 짠다. 2001년 포뮬러(원료)를 PHMG로 바꿨다. 에스케이케미칼에서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고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안전 검증을 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안 했다. 비용 절감을 과도하게 추진하면서 정작 중요한 안전성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인 PHMG가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2001년 회사 연구소 직원들은 알았던 것 같다. 당시 연구소에 근무했던 직원이 검찰에서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들었다. 검찰 수사가 확대된 것도 이 진술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위험성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가습기에서 분무된 것이 날아가 폐까지 들어가리라고는 생각 못한 것 같다.”
-옥시에 연구소가 있지 않나? 거기서 안전성을 검토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름이 연구소이긴 한데 거창한 연구소가 아니다. 직원도 정규직 연구원 네댓 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취급하는 품목만 수백 가지다. 클레임 들어오면 제품을 점검하는 정도다.”
-당시 유해성 확인을 위해 동물실험 등을 계획했다가 안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거기까지 내가 알지 못한다. 다만 2001년 동양 계열이던 옥시를 영국계 다국적회사 레킷벤키저가 인수하면서 계열사를 매각하고 공장도 정리하는 등 회사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가습기살균제는 매출도 낮고 주요 품목도 아니었다. 안전성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옥시는 왜 무대응으로 일관하나?
“옥시는 100% 외국투자 기업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2011년 터지면서 레킷벤키저 본사에서 ‘모든 절차를 법률에 따라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다 보니 법무팀이 실세가 됐다. 모든 결재가 법무팀을 거치게 했고, 외부 로펌 주도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임직원들에게는 ‘어떤 미디어와도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홍보팀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더 불리하게 작용할 텐데?
“직원들도 불만이다. 우리 잘못으로 수많은 분이 피해를 봤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검찰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우리도 답답하다. 회사에 건의하지만, 본사 입장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외국투자 기업의 속성인가?
“외투기업이다 보니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사회적 책임이나 연구개발, 투자는 뒷전이다. 2001년 레킷벤키저가 주인이 된 뒤 우리가 개발한 신제품이 없다. 외국에서 잘 팔리는 물품을 한국에 들여와 되파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오래 붙어 있지 않는다. 특히 임원들은 다 외국 사람인데, 2~3년에 한 번씩 바뀐다. 가습기살균제 제조와 관련해서도 임원들이 과거 사정을 잘 모른다.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 그걸 보고 아는 수준이다.”
-불매운동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외투기업이라 경영진은 정 안 되면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은 직원 수백 명은 매우 큰 문제다. 지금도 공장 생산량이 30% 정도 줄었다. 우리가 잘못했고,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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