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 회원이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책임을 회피해온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참여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와 중소상인, 소비자단체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옥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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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열쇳말로 본 ‘가습기 살균제’ 사태
① 이윤에 눈먼 대기업
소환된 SK케미칼 독성원료 유통 방치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10일 “에스케이케미칼 직원 정아무개씨 등 2명을 소환해,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통 과정 등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옥시와 같은 원료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수십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 대해서도 이르면 이번주 관계자 소환 등 본격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검찰, ‘원료물질’ 제공 뒤늦은 수사“살균제 제조에 쓰인지 몰랐다” 해명 에스케이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인 피에이치엠지를 제조해 옥시에 제공했으며,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옥시와 같은 원료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10~20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동안 외국투자기업인 옥시에 집중됐던 검찰 수사가 국내 대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피에이치엠지를 생산·판매해온 에스케이케미칼은 ‘흡입 독성을 알고도 가습기 살균제로 제조·판매되는 것을 방치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케미칼은 “피에이치엠지를 만들어 중간 유통상에 넘기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로 제조·판매되는지 몰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에스케이케미칼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았고, 시장 점유율 1위사에 원료물질을 제공했다는 점 등에서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안전성 검사를 나름대로 진행했지만 유해하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제품을 팔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성 검사는 매우 간략한 수준이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안전성 검사는 시료에 대한 성분 분석 수준으로, 흡입 독성 실험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균제가 물에 섞여 분무되는 만큼 흡입 독성 실험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이를 건너뛴 것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② 연구·법조 윤리 실종 김앤장, ‘임신쥐 죽은 결과’ 통째로 뺐다 옥시의 법률대리인 김앤장이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독성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해 지난해 말 검찰에 낸 의견서에 옥시에 불리한 내용이 통째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제출 의견서 3건 입수해 확인
옥시에 유리한 내용 발췌 “인과 없다” <한겨레>가 10일 입수한 김앤장이 작성한 3건의 의견서를 보면, 서울대 조아무개 교수 연구팀이 임신한 쥐를 상대로 한 독성실험(생식독성실험) 결과는 빠진 채 일반 쥐를 상대로 한 실험(흡입독성실험) 결과만 인용됐다. 앞서 조 교수는 2011년 11월 옥시 관계자와 김앤장 변호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임신한 실험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죽었다. 생식독성 가능성이 존재하며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중간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조 교수 쪽은 “김앤장이 우리 팀으로부터 생식독성실험의 원자료까지 받아 가서 유해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앤장은 “생식실험 발표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 교수 팀으로부터 생식독성실험 최종 보고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뒷돈을 받고 옥시 쪽에 유리한 실험보고서를 작성해준 혐의로 지난 7일 구속됐다. 김앤장이 여러 실험보고서 중 옥시 쪽에 유리한 것만 검찰에 제출한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당한 변론 활동을 넘어섰다는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김앤장의 실험보고서 왜곡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김앤장이 보고서 내용 중 단순히 유리한 내용만 취사선택했다면 도덕적 비난은 받을 수 있겠지만 위법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김앤장이 불리한 내용을 통째로 빼는 등 결과를 조작하는 데 적극 가담했다면 증거인멸 교사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③ 정치권 무책임 번번이 피해구제 특별법 막은 당정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지난 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4건의 법안 처리가 불발된 것을 두고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가 10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법안을 집중 논의했던 2013~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회의록을 살펴보니, 야당이 발의한 법안은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나 소극적 태도로 발이 묶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관계가 드러난 뒤 피해가 일파만파 커져왔음에도 국회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수사 끝난 다음” “인과 몰라” 반대
야당 발의법안 4건 환노위서 낮잠 2013년 4~5월 당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진보정의당(정의당) 등 야당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가 물살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환노위 회의록을 보면, 기획재정부는 “폐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간의 인과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소송이 진행 중이다”라는 논리로 법안 처리를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새누리당 환노위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교통사고’에 빗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특별법 제정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해왔다. 9일 환노위에서도 일부 법안이라도 의결하자는 야당 의원에 맞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검찰 수사가 끝난 다음에 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④ 보건 당국의 무지 애경 살균물질 ‘MIT’ 폐 굳히는데도 몰라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이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가습기 살균제의 화학물질이 인체 내 면역세포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세포 단위의 독성실험에서 밝혀졌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최근 독성학 저널인 <톡시콜로지 레터스> 제238호에 실은 논문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인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가 딱딱하게 굳는 현상인 ‘폐 섬유화’를 일으킨 사실을 보고했다. 면역세포 파괴…세포 빠르게 괴사
수사빠진 제품 ‘폐 섬유화’ 보고돼 이번 실험 결과를 보면, 엠아이티가 공격한 것은 ‘인체 면역체계의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대식세포였다. 대식세포는 세균을 잡아먹고 인체에 침입한 이물질을 처리하며 인체의 면역체계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무엇이든 잡아먹어 ‘탐식세포’라는 별명이 붙은 이 세포도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화학물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메틸이소티아졸리논에 노출되자 산화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빠르게 괴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역시 가습기 살균제 사용량을 가정해 혈관내피 세포에 투여한 실험에서도 용량에 비례해 세포 괴사가 관찰됐다. 검찰은 옥시싹싹, 세퓨 등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계열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있고, 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이플러스 등 클로로엠아이티/엠아티(CMIT/MIT) 계열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상태다. 이번 실험을 총괄한 허정두 경남생명자원연구센터장은 10일 “2011년 질병관리본부 실험 때에도 시엠아이티/엠아이티의 세포 독성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실험은 인체 안의 면역세포를 공격해 고사시키는 기본적인 폐 섬유화 메커니즘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엠아이티/엠아이티 계열 살균제를 사용해 사망한 피해자가 있는 만큼 추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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