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1 19:19
수정 : 2016.05.11 22:13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
여론 떠밀려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서
2012년엔 “업체-소비자 문제” 발빼
피해자들 “찔끔찔끔 발표 말고
종합적 특별법 제정하라”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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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를 항의 방문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김덕종씨(오른쪽 둘째)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오른쪽 셋째) 등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방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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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비 지원’ 방안을 뒤늦게 검토하고 나섰다. “제조업체와 소비자의 문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지엽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 피해자들이 치료비 등으로 생활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말 질병관리본부가 폐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힌 이후,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추가적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조처는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쪽에서는 기존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지원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환경부는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구제받기 위해선 ‘개별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등을 ‘환경성 질환’으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처럼, 환경유해인자와 상관성이 있는 질환으로 인정되면 사업자로부터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해 12월 환경보건위원회(위원회)는 “제품 안전에서 발생한 문제로 소비자가 책임질 일”이라며 이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던 이듬해 5월, 기획재정부는 다시금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해 제조업체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만큼, 특별법을 만들 순 없다며 내놓은 대안이다. 그해 8월 정부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정부지원계획’을 확정하자, 2013년 12월 위원회는 그제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게 된 환경부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방침이 정해졌고, 여론을 반영할 필요가 있어 위원회에서 가결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고쳐 환경부가 폐손상 인과관계를 판정받은 피해자 168명에 대해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2014년 4월, 인과관계가 밝혀진 지 2년 6개월 만이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 대표는 “피해자 지원이 근거 법률보다도 정부 ‘의지’의 문제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환경부가 이제 와 생활비 문제 등을 찔끔찔끔 발표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직속기구로 대책 기구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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