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4 17:42
수정 : 2016.06.14 21:53
살균제 판매축소 ·중단 이유로
마트 파견노동자 300명 무더기 해고
“회사탓 불매운동 벌어졌는데
노동자들에 피해 떠넘겨” 비판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옥시 불매운동을 결산하고 책임자 처벌과 옥시 관련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대형마트에서 옥시 제품을 판매 진열해 온 김아무개(42)씨는 지난 5월 중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근로계약기간이 아직 남았는데도 파견업체는 아무런 보상없이 판매직은 5월30일, 진열직은 6월30일까지 짐을 싸라고 알려왔다. 원청인 옥시는 열흘 전 판매 직원들을 모아놓고 교육할 때만 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합의 중”이라며 안심시켰다. 김씨는 “월 123만원을 받으며 야간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하루 9시간씩 일했는데 물건처럼 내팽겨쳐지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권고사직 통보 사흘만에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른 직원들도 다 (사직서를) 냈고 옥시가 앞으로 영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무엇보다 손님한테 욕 먹으며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14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옥시 파견업체 더엠커뮤니케이션즈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옥시는 대형마트에 파견한 판매 진열직 노동자 300여명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있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옥시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대형마트가 옥시 제품 판매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면서 판매 진열을 담당하던 파견 노동자들이 사직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옥시는 소비자에게 살인제품을 판매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면서도 노동자에겐 낮은 임금을 지급하려고 파견 노동자를 써왔다”며 “회사의 잘못으로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
14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 및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롯데그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뒤 대형마트 등에서 옥시를 판매하는 파견 노동자들은 온갖 비난과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김씨는 “손님들이 ‘사람을 죽인 회사에 다니냐’고 욱박질러서 옥시 브랜드가 찍힌 앞치마나 이름표를 달지 못했다”고 전했다. 마트에서 지나가던 손님들이 “아직도 옥시를 파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이 다반사였고, 판촉행사를 하면서도 8시간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 서있기도 했다. 그러나 옥시나 파견업체는 이에 대한 대응 지침을 마련하지 않고 파견 노동자들의 이런 상황을 방치했다. 대부분 자녀를 키우는 여성 노동자들이라 그 고통은 더욱 심했다. 10년 넘게 옥시 제품을 판매해 온 한 50대 여성 노동자는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옥시가 좋은 제품이라고 회사가 교육했고 회사 말을 믿고 판촉해왔는데 사람의 생명을 해쳤다니 너무 무섭고 화난다”고 했다. 그가 일하던 마트도 옥시 제품의 판매를 중단해 일자리를 잃을 상황이다. 옥시 관계자는 <한겨레>의 취재 요청에 “옥시를 판매 진열해온 파견 노동자의 근로 현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