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6 21:30
수정 : 2016.07.26 22:03
19년 전 제조사 SK보고서 확인
“섬유향균제...눈 닿으면 심한 자극”
유해성·조치사항 등 내용 포함해
서류 없다더니 뒤늦게 특위 제출
유해성 관보 게시 안해 위법행위
국가책임 물을 수 있을지 주목
고용노동부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1997년부터 인지하고도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공표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판매, 피해상황 대처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드러남에 따라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습기살균제 특위) 소속 이정미(정의당)·신창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해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26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1997년 PHMG 제조업체인 유공(현 에스케이케미칼)이 고용부(당시 노동부)에 제출한 것이다.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은 신규화학물질 제조·수입자가 사전에 유해성·위험성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 고용부는 조사보고서를 검토하고 △물질 명칭 △유해성·위험성 △노동자 건강장해 예방조치 사항을 사업주에게 통보한 뒤 환경부 등 관련 부처에 통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유해성 물질을 상시적으로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규정이다. 해당 보고서엔 PHMG의 용도가 ‘섬유의 항균제’로 적혀 있는데, ‘눈에 접촉하면 심각한 자극을 줌’, ‘흡입했을 때 환자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PHMG에 오염된 물은) 폐수처리시설이 있는 위생시설로 보내거나 허가를 받고 폐기돼야 한다’ 등의 유해성·위험성과 조처사항이 적시돼 있다.
그러나 고용부는 이 내용을 관보를 통해 공표하지도, 관련 부처인 환경부에 통보하지도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20년 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왜 공표하지 않았는지, 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통보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다”며 “통상적으로 공표 후 관계부처에 알린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신창현 의원은 “고용부가 바로 공표했다면 옥시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며 “고용부의 법률 위반은 정부의 책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검찰은 지금이라도 고용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공표 절차가 누락된 사실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고용부 조사는 화학물질을 직접·상시 취급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호 조치를 목적으로 한 조사로,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와는 목적·내용·조치 기준이 다르다”며 “원료물질을 다른 물질과 혼합해 제품으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가 분무됐을 때의 유해성을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해당 조사는 유해성 물질이 인간 신체에 지속적·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것인데 이 내용이 환경부에 통보됐다면 ‘유독성이 없다’고 판단한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고용부의 직무유기가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고용부는 최근까지 이 보고서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몰랐다. 두 의원이 고용부에 자료 요구를 하기에 앞서 송기호 변호사는 고용부에 해당 보고서 등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이에 지난달 15일 고용부는 “보고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당시 유공이 우리 부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이유로 추정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두 의원의 요청 이후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서류를 찾았다”며 뒤늦게 자료를 제출했다.
박태우 정은주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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