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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2 20:44 수정 : 2016.10.02 20:50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장

인간의 뇌 회로는 평소 ‘나쁜 일’은 ‘남의 일’로, 그저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로 착각하도록 설계가 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자신에게 실제로 나쁜 일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아마도 불안이 일상을 삼키는 걸 막기 위한 조화일 것이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몇 달이 지났지만 서울 강남역 ‘여혐’ 살인 사건 때 나온 이 문장을 가끔 되뇌어본다. 이 말은 뇌 회로의 일상적 착각을 돌아보게 한다. 그저 운이 나빴던 것으로 보였던 남의 일이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선 ‘내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고민과 대응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은 분노하는 한편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가습기를 사들였거나 살 생각을 해봤을 테니 말이다. 우리 집도 오래전 가습기를 사들인 적이 있었다. 가습기는 늘 세척이 문제였다. 내가 사들인 모델도 세척이 불편했고, 때가 잘 끼니 곧 뒷방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우리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사실 여러 우연의 결과물이다. 가습기를 샀을 때가 살균제가 대중화돼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가족 중에 특별히 호흡기가 약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겨울철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들인 가습기가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세척이 귀찮게 되니 쉽게 내다버린 덕을 본 셈이다. ‘우연히’ 가습기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나 역시 어느 겨울날 대형마트에서 “이런 게 있었네” 하면서 살균제를 집어올렸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가습기 사태 이후 다들 약간씩은 ‘화학물질 포비아’가 되었다. 이른바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선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독성물질 관리’라는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이다.

최근엔 가습기 살균제 성분 물티슈가 한바탕 난리를 치더니, 이번엔 치약으로 논란이 옮겨붙었다. 일부에선 외국은 살균제 성분을 일정 수준까지 허용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회수와 환불 사태를 ‘호들갑’이라고 후려치기도 한다. 아모레퍼시픽 등이 국내 기준으론 허용되지 않은 성분을 쓴 건 맞지만, 외국 기준으론 소량 함유를 허용하고 있으니 인체엔 거의 해롭지 않다는 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설명이다.

국내에선 금지하고도 외국 기준을 들어 괜찮다고 하는 모순적인 식약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일상적으로 먹고 입고 씻고 바르는 제품에 대해서 우리 정부의 독성 기준과 관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마저도 정해진 독성 기준을 준수하지 못한 채 “죄송하지만, 몰랐다”고 말하는 지경이라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뿐만일까. 환경호르몬 범벅이라던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는 지금도 어린이집 곳곳에서 눈에 뜨인다. 납투성이로 문제가 많다는 어린이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 바닥재인 우레탄은 며칠 전에 교체·관리 방침이 나왔지만, 내 아이에게 크건 작건 잠재돼 있을 피해에 대한 우려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적어도 안전과 생명의 문제에 관한 한 소비자와 기업 간 힘의 역학관계를 재조정하는 게 ‘우연히 살아남기’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란 걸 가르쳐줬다. 20대 국회에는 소비자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전제로 한 법안들이 대거 올라가 있다. 여당 대표가 일주일 만에 단식투쟁을 접고 국감에 복귀한다고 하니, 바쁘신 분들이 혹여 민생 국회의 겨를이 날까 기대해 본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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