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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6 09:11 수정 : 2017.06.06 09:20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서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경찰의 저지로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로인해 유가족의 편지 내용 발표는 30여분 이상 지체됐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고자 1282명중 276명만 피해 판정
폐 뿌옇게 보이거나 급성 섬유화 등
일부 폐질환만 인정하는 기준 쟁점
제조사 기금서 추가지원 가능하지만
한도 낮아 “구제특별법 개정” 목소리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서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경찰의 저지로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로인해 유가족의 편지 내용 발표는 30여분 이상 지체됐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피해자들은 “환영한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대통령 사과, 피해자와의 만남,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이 대통령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 것에 비해, 진상규명과 지원확대 등은 관련법 개정을 비롯해 정치적·절차적으로 풀어야 할 난제가 적지 않은 사안이다. 피해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정도의 전향적인 방안을 정부가 마련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판매가 시작된 1994년부터 피해를 인지한 정부가 판매를 금지한 2011년 11월까지 수많은 사망 및 질환 피해자가 발생한 탓에 ‘안방의 세월호’로 일컬어진다. 지난달 말까지 4차례에 걸쳐 5615명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195명에 이른다.

2011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국무총리실에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피해대책과 재발방지를 총괄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아무 조처도 내놓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국회 국정조사에서 정부 책임이 드러났음에도 박 전 대통령 역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사과 검토 발언은 관련 피해자들한테 전향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 판정이 끝난 1~3차 신고자 1282명 가운데 276명만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성 1단계(가능성 거의 확실) 또는 2단계(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았을 뿐, 나머지는 3단계(가능성 낮음) 또는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올해 1월20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구제특별법)이 제정돼 1·2단계 피해자들은 국가의 구제 대상이 됐지만 판정기준 문제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로는 정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한 폐질환 한 가지만 인정되고 있다. 그나마 폐를 찍은 영상사진이 뿌옇게 보이는 ‘간유리 음영’ 현상이 보이고 급성 폐섬유화가 나타났을 때만 피해자로 분류된다. 가습기 살균제로 발생할 수 있는 비특이적 질환, 즉 천식·비염·폐렴·폐암 등은 건강피해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는 그동안 증거주의에 입각해 판정기준을 마련했다고 주장해왔지만,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비특이적 질환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 3·4단계 판정 피해자들은 피해보상 대상에서 빠져 있다가 그나마 구제특별법 제정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가 조성하는 기금을 통해 지원을 받게 됐지만, 기업 기금의 한도가 낮게 설정돼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지원되는 병원비와 장례비 등은 정부가 제조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조건이어서 정부로선 구상권 행사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피해자를 엄격히 제한할 수밖에 없다. “화학 물질과 제품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해 구상권 청구 부담을 전제하지 않고 모든 관련 피해자들에게 의료 지원을 하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어느 선까지 수용할지도 정부가 고민할 대목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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