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5 20:09
수정 : 2016.04.25 22:09
|
정세화 한진해운신항만 사장(오른쪽)이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에서 열린 ‘해운시장 및 해운동맹 재편 관련 대책회의’에서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경영정상화 방안 막판 포함
조양호 경영권 포기 각서
런던사옥 매각 등 내용 담겨
대주주 사재출연은 없는듯
한진해운이 2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와 함께 4천억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자구대책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진해운은 이날 ‘고강도 경영정상화 방안(자구대책) 마련’이라는 보도자료를 내어, 광양 터미널을 비롯해 중국 자회사 지분, 영국 런던 사옥, 미국 애틀랜타 사옥 등을 매각해 4112억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 담기진 않았으나 조 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도 포함됐다. 하지만 기존 한진해운 자산을 내다 파는 계획이 대부분이고, 한진그룹 차원의 지원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상표권을 사주는 대가로 지급하겠다는 800억원이 전부다.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의 사재 출연 내용도 빠져 있다. 더욱이 용선료 협상과 선박 금융, 금융기관 차입금, 공모 회사채 상환유예 등 채무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어서 채권단이 고려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신청서 접수 뒤 “채권단 실무자 회의에서 검토한 결과 용선료 협상 등 정상화 추진 세부 방안에 대한 구체성이 미흡해 보완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단 신청서는 접수하되 보완한 자료를 보고 재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산은이 언급한 ‘구체성’은 현대상선이 내놓은 경영정상화 방안이 잣대다. 예컨데 자율협약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용선료(선박 임대료) 인하 협상과 관련해서도 현대상선은 협상 시한과 주체, 인하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으나 한진해운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현대상선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한진해운이 최소한 현대상선에 준하는 수준의 자구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상선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것은 물론 현대증권과 현대부산신항만 등을 매각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나 형평성 시비가 불거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원칙이다. 이를 위해선 자구방안의 내용이나 구체성에서 차이를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채권단의 이런 태도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애초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이날 오전까지 구체적인 자구계획이 없다면 즉시 반려하겠다고 한진해운 쪽을 압박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진해운의 빚이 5조6천억원에 이르는데 자율협약 개시는 그 돈을 빌려주고 회사채에 투자한 사람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다. 이런 채권자들한테 채무 유예나 출자 전환 등 손해를 감수해달라고 설득하려면 한진해운 쪽도 이에 걸맞은 뭔가를 추가로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채권단과 사채권자를 설득하려면 경영진이나 대주주도 손실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관계자는 “조 회장은 부실에 빠진 한진해운을 구하려 투입된 구원투수와 같다. 조 회장이 경영 부실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닌 만큼 현대상선과 상황이 다르다”며 사재출연 요구에 선을 그었다.
한편, 한국신용평가는 이날 한진해운의 회사채 신용등급과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각각 ‘BB’와 ‘B’에서 ‘B-’, ‘C’로 낮췄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