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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27 19:20 수정 : 2016.04.27 22:42

기업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하자
② 견제받지 않는 재벌 총수

현대 현정은·한진 최은영
경험없이 ‘회장’ 물려받아
전문경영 내치고 사익 추구

총수 부인 초보경영
“경영 경험이 없는 ‘총수 부인’의 오너 경영 체제가 낳은 예고된 경영 실패다.”

침몰 위기에 놓인 국내 해운업계는 현재의 경영난이 세계적인 해운 경기 불황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부의 경영 실패 요인도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이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총수 부인’의 회장 취임과 측근들을 앞세운 독단적 경영, 사익 추구를 위한 각종 전횡으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 회장은 남편인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2003년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다가 갑자기 자살하자 대신 회장에 취임했다. 현 회장은 그 이전까지 전혀 경영 경험이 없었다. 그룹 안팎에선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발탁해 소유-경영 분리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현 회장은 오너 경영 체제를 고집했다. 현대상선의 전직 임원은 27일 “해운은 세계경제 흐름과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기름 가격의 동향, 배 건조에 필요한 금융에 관한 지식, 최장 20년에 이르는 용선계약을 위한 전략적 판단 등 복합적인 경영능력이 필요한 사업이어서, 초보 경영으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평양 방문을 마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2009년 8월17일 오후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귀환하고 있다. 파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 회장은 경영을 잘 모르는 만큼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잘 활용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갔다. 현대그룹의 전직 임원은 “현대로지스틱스 박아무개 사장은 2010년 현대건설 인수에 필요한 외부자금 유치를 위한 지급보증에 난색을 보였다는 이유로 임기 중에 경질됐다. 현대상선의 노아무개 사장은 정주영 회장을 보좌했던 대표적 전문경영인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을 겪던 범현대가 쪽과 잘 안다는 이유로 물러났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해운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지난해까지 현대상선의 대표를 맡은 사람은 모두 6명인데, 평균 재임기간이 1.5년에 불과하다. 현대그룹은 “경영실적 부진으로 문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광고물량은 현 회장 취임 이후 아이에스엠지코리아라는 광고사가 독식하고 있다. 아이에스엠지의 황두연 대표는 수년간 회삿돈 100억원 이상을 횡령한 게 드러나 201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현대와의 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현대 같은 거대 재벌이 소규모 광고사에 10년 이상 광고 일감을 몰아주는 것도 전례가 드물지만, 회사 대표의 불법행위가 드러났는데도 거래를 지속하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다. 현대그룹의 전직 간부는 그 이유에 대해 “황 대표와 현 회장 간의 유착 때문”이라며 “황 대표는 현대에서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데도, 사실상 2인자 행세를 하며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한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노조는 2012년 황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로 그룹 사장들을 불러 보고를 받고 지시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해 충격을 줬다.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황 대표 사무실에 간 사람들은 사장들이 아니고 임원들”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다툼 벌이며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

2003~2008년 해운 호황기엔
체질개선·미래 투자 않고 허송

한진 최은영 닮은꼴 논란
경영난에도 고액 보수 챙겨

황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제기된 현대증권의 현대저축은행 인수 합병 과정의 부당 개입, 현대그룹 종합연수원 건설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현대상선 전직 간부는 “황 대표는 경영이 이미 어려워지기 시작한 2012년 서울 남산의 반얀트리호텔을 1600억원에 인수한 것에도 간여하고, 광고 외에도 그룹 관련 건물 및 주차장 관리, 사무용품 공급, 선박에 필요한 기름·음식·부품 공급 등 각종 이권사업을 뒤에서 챙겼다는 소문이 그룹 내에 파다하다”며 “현 회장 가족이 100%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벌은 2009년 아이에스엠지의 지분 40%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현대상선 경영실패 과정

현 회장은 또 현대중공업과 케이씨씨가 현대상선 주식을 매입한 뒤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자,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내세워 국내외 투자자와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했다. 현 회장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대가로 주가가 떨어져도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현대상선의 주가 하락으로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결국 2대 주주인 쉰들러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대상선 경영 실적 추이

현대상선이 현 회장 취임 이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이 취임한 2003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까지 6년간 해운경기의 호조에 힘입어 총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2조3천억원, 1조8천억원에 달했다. 현대상선 전직 임원은 “당시 외국의 경쟁 해운사들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고, 비용 절감 등 체질 개선 노력을 기울인 반면 현 회장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했다”며 “2010년 세계 해운 경기가 악화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룹연수원 신축, 남산 반얀트리호텔 인수에 이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2000년대 중반 초대형 선박 수주 시기를 놓친 것은 맞지만 현대 탓만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부채비율 관리가 투자에 장애가 됐고, 수출입은행은 해외 경쟁사들이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했을 때 현대상선보다 낮은 금리로 선박금융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2012년 3월27일 울산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고 조수호 전 회장의 이름을 딴 ‘한진 수호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진해운 제공

한진해운의 최은영 전 회장도 현정은 회장과 닮은꼴이다. 남편인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자 2007년 직접 경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은 그 이전에 전혀 경영 경험이 없었다. 최 전 회장은 최근 한진해운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에 자녀들과 보유 중인 한진해운 주식을 모두 판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현정은 회장도 경영난 속에서 지난해 현대상선·엘리베이터·증권 등 3개사로부터 총 45억3200만원의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는 한해 전 15억8600만원의 3배인 것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대형 참사의 뒤에는 재벌오너의 경영책임 문제가 놓여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국 재벌 체제의 최대 취약점은 무능한 총수의 잘못된 결정을 수정할 내부의 감시와 견제 메커니즘이 약해, 그룹 전체가 부실해지고, 그 비용을 국민경제 전체에 전가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라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와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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