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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27 19:27 수정 : 2016.04.27 22:27

기업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하자
② 견제받지 않는 재벌 총수

‘구조조정은 곧 정부 자금지원’
신원 박성철 빚 탕감 받은뒤
빼돌린 재산으로 경영 복귀
금호도 사주일가 경영권 유지
“재벌 살리는 구조조정 그만”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이 정당하게 평가받길 기대한다.”

사과는 없었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은 회고록을 펴낸 뒤인 2014년 대우그룹의 경영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우그룹은 1997년 당시 분식회계·불법대출 등이 드러나 해체됐는데,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만 30조원에 이른다. 당시 경영을 이끌다 그룹 해체 뒤 국외 도피를 시작한 김 전 회장은 2006년에야 분식회계·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대통령 사면을 받았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검찰에서는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을 통해 최근까지도 그의 차명재산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셈이다.

최근 국책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이 임박한 가운데,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가 미리 지분을 매각한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영 실패로 주주와 투자자들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고, 공적자금 투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신만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재벌 총수들의 무모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기 위해 사외이사제 도입 등 다양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조처들을 취했으나 사실상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대주주들의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이유로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기에 앞서 기업을 부실로 이끈 사주·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으로 기업을 살려주면 나중에 건네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금호그룹의 경우, 사주 일가가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뒤 2010년 경영난에 빠지면서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주요 계열사인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이 자율협약(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는데, 국책은행 등이 중심이 된 채권단과 금융감독당국은 박삼구 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을 최소 3년 동안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에서 “구조조정 요구에 불응하는 총수 일가를 달래기 위해 그룹의 경영권 유지를 약속한 채권단의 타협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경영난을 겪는 와중에 경영진이 개인 재산을 빼돌린 경우도 있다. 중견 의류업체인 신원의 박성철 회장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가 진행되던 1998년 부동산 등 차명재산을 숨겨 회사의 빚을 탕감받았는데, 그 뒤 차명재산으로 경영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세청을 통해 탈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수감됐다.

그런 탓에 ‘구조조정은 곧 정부의 자금지원’이라고 받아들이는 한국 경영계의 왜곡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부실이 벌어지면 대주주와 주주, 그리고 채권자 순서로 경영 책임을 물어야 하며, 정부가 자금을 투입하는 영역은 인력 재배치 등의 구조조정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사주·경영진이 ‘사재 출연’에 나서는 것을 경영의 책임을 졌다고 받아들이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퇴출해야 하는 기업들을 퇴출시켜 경영진이 책임을 지도록 하고, 노동자들의 전직 등 실업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 경영진 책임을 물은 뒤에 공적자금을 투입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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