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1 20:08
수정 : 2016.05.01 20:49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논란
산은·한은 대손충당금 70% 불과
부실기업 많아 수십조 필요한데
국회 동의로 추경편성해도 한계
한은은 정부 지원요청에도 난색
‘발권력 남용 선례 남길까’ 우려
“책임공방 아닌 해법 머리 맞대야”
여·야·정 모두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 즉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두고선 이견이 크다.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견해 차이는 자칫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날 우려로 이어진다.
■ 자본확충 왜? 얼마나? 은행 등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떼이거나 떼일 위험이 커지면 그에 상당한 자본(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런 자본을 쌓지 않으면 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전이되면서 자칫 ‘뱅크런’과 같은 은행 파산 사태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 부실이 은행 줄도산으로 이어진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은행(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이 부실기업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험이 급격히 커지고 있고, 이를 감내할 자본은 충분히 쌓아 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령 대우조선 한 곳만 따져보면,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이 기업에 각각 4조원과 9조원의 돈을 빌려주면서도 충당금은 한 푼도 쌓지 않았다. 빌려준 돈 100%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결정이 나면, 쌓아야 할 충당금은 순식간에 빌려준 돈 13조원 전액이 된다.
현재 구조조정이 한두 군데 기업이 아니라 업종 단위로 이뤄지고 있고, 해당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업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면 산은과 수은이 쌓아야 할 충당금(자본손실) 규모는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불어난다. 특히 산은과 수은은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전임에도 대손충당금 적립률(충당금 적립액 대비 부실채권 비중)은 70% 수준에 그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은행) 건전성 문제”라고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시장에선 구조조정이 큰 폭으로 진행될 경우 국책은행에 필요한 자본 확충 규모는 수십조원으로 불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누구 호주머니에서 통상 정부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를 염두에 두고 매년 예산안을 짠다. 문제는 현재 자본확충 규모는 올해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정부가 국책은행에 대규모 자본확충을 위해 재정을 쓰려면 반드시 추가경정(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하지만 추경은 대량 실업이나 천재지변 등 특수한 상황에서만 편성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고, 설령 해당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유일호 부총리가 최근 자본확충 관련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해 “추경 요건이 되는지는 검토해봐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추경 규모를 염두에 두면, 추경만으로 국책은행에 대한 충분한 자본 확충은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한 추경 규모는 9조원에 그쳤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필요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정부가 한은에 줄기차게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도 추경만으로는 자본확충 재원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다.
문제는 한은이다. 한은은 발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번에 정부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요구가 잇따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은이 국책은행의 유상증자(자본확충의 직접적 방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국회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도 한은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배경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현실화될 부실채권 규모가 앞으로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본확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와 한은은 물론 정치권도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댈 때이지 서로 책임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경락 박승헌 기자
sp96@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