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최근 한국은행과 정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가 본말이 전도된 공허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논의의 핵심 쟁점은 구조조정 비용을 누구 호주머니에서 더 많이 꺼내느냐다. 그러나 정작 치러야 할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되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구조조정의 범위와 속도, 방식에 따라 널을 뛰기 마련이다. 구조조정이 특정 기업 한두 군데를 넘어 여러 업종 다수 기업으로 확대되고, 빠른 속도로 이뤄져야 한다면 국책은행 자본 확충 비용뿐만 아니라 공급해야 할 신규 자금 규모는 수십조원으로 불어난다. 반면 현재 거론되고 있는 한진·현대상선 등 일부 기업을 수술하는 선에서 그것도 단기가 아니라 중장기에 걸쳐 진행된다면 구조조정 비용은 많아야 2조~3조원 안팎에 그친다.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면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은 물론 한은의 발권력 동원도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반대로 소폭이라면 한은 지원은커녕 추경 편성도 필요 없을 수 있다. 산업은행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출자전환으로 보유하고 있는 일부 기업들의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면 될 일이다.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정부가 보내는 신호마저 혼란스럽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의 출자 필요성을 강조하며 ‘금융 불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정부의 머릿속엔 대규모 구조조정이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 같다. 한두 기업을 수술한다고 해서 흑자 기업이 도산으로 이어지는 신용경색까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현재 편성 중인 내년 예산 기조만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흑자 기업 도산까지 염두에 둔다면 정부는 예산을 넉넉히 편성하는 게 이치에 맞지만 재정을 적게 쓰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부 내에선 “구조조정 때문에 예산 기조를 바꿀 필요는 없다”란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것만 보면 구조조정은 ‘시늉만 하다 끝나겠구나’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김경락 기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