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사령탑도 없고 방향도 모호한 기업 구조조정 |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져가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정부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호하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한국은행이 나서라고 압박하는 데만 여념이 없다. 본말이 뒤집히고, 주객이 바뀐 꼴이다. 이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몇몇 부실기업의 재무상태를 개선해 눈앞의 큰 불만 대충 끄고, 나머지는 또 미뤄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번 구조조정도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 구조조정이 시장에 의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 원론적으론 맞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관계자 간 협상을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다. 주채권은행들도 부실기업 정리를 이끌 능력이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곧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켜왔다. 부실기업 여신을 국책은행에 떠안기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부실을 키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도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을 천명하고, 책임있게 권한을 행사할 사령탑을 앞세워야 한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사령탑이라면 우스운 일이다.
정부가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강조하면서, 한국은행 탓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몰고 가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자본확충은 불가피한데, 그것은 당연히 정부가 재정을 투입할 사안이다.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지원에 나서야 할 때가 있겠으나, 어느 때든 중앙은행의 구실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정부의 한은 압박은 국책은행을 잘못 이끌어온 책임을 국회에서 추궁당할까봐 이를 피해보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구조조정이 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요즘 정부 움직임을 보면,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한 뒤 산업은행에 몇몇 부실기업 처리만 맡기고 정부는 뒤로 숨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그것으로 위험이 다 해소될 상황이 아닌데, 참으로 안이하다. 상장사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3분의 1이나 된다. 세계 경제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없다. 최대 시장인 중국 경제는 흔들리고, 우리 수출기업에 불리한 쪽으로 구조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잠재부실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도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시늉만 하고, 내년에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에 밀려 구조조정을 흐지부지했다가 더 큰 후폭풍이 밀려올까 두렵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예산을 담당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업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정도대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 국회 동의를 얻어 보증채를 발행하는 길도 열어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이런 엄중한 때에 책임지고 나설 생각이 없는 경제부총리라면 하루빨리 물러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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