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4 19:48
수정 : 2016.05.24 22:21
국책연구소, 정부·채권단에 쓴소리
책임주의·비용 최소화 원칙 없이
국책은 자본 확충·용선료만 신경
“정부, 차등 감자엔 언급조차 안해”
향후 성장동력·실업문제 등 총괄
장기적 안목 정부 사령탑 필요한데
구조조정 범위·규모 부처간 잡음만
“대원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컨트롤타워도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와 채권단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원칙을 확립하고 입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정부에 쓴소리를 내놨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이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현재 구조조정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연구부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한 ‘2016 경제 전망’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구조조정의 대원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기업을 어렵게 한 정도에 따라 책임을 지우는) 책임주의와 (국민의 비용을 줄이는) 비용 최소화의 원칙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주주·경영진·채권단·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이 필요하고, 이런 조정을 위해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마련 작업과 구조조정 대상 기업인 현대상선·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울지에 대해선 별다른 원칙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부실의 최대 책임자인 대주주에게 가장 큰 비용 부담을 지워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차등 감자’(대주주의 주식수를 일반 주주보다 더 높은 비율로 줄이는 행위)가 꼽히지만, 여태껏 정부나 채권단 모두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또 김성태 부장은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정부 내 추진 체계가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엔 부실기업 정리 자체에만 주목해도 되는 환경이었으나, 현재의 기업 부실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취약한 산업경쟁력 등 과거보다 넓은 차원에서 진행된 점이란 걸 고려해야 하며 구조조정 후 성장동력을 만드는 작업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증가 등의 문제까지 포괄할 수 있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부실이 악화된 몇몇 기업 또는 업종의 생사를 결정하는 미시적 구조조정을 넘어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려는 장기적 안목의 구조 개편이 필요한데 이런 처방전을 찾아보기 힘든 데 대한 문제제기로 풀이된다. 여기에 구조조정을 총괄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이를 지원하는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내에서도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표명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도 최근 낸 보고서에서 “정부는 개별 기업의 재무현황과 업황에 대해 채권단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업과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나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신속한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서는 (정부 부처로 구성된) 컨트롤타워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방향 설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 정부 안에서도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처 간은 물론 같은 부처 내에서도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컨트롤타워가 작동하겠느냐”는 반응이 대다수다.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을 써야 하는 기재부 예산실 쪽에선 “구조조정의 대략적 윤곽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라 곳간을 헐 수는 없는 것 아닌가”(예산실 고위 관계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금융위에선 “구조조정 메스를 만져본 사람이 정부 내에 임종룡 금융위원장 말고 누가 있나”(금융위의 한 과장급 간부)라며 다른 부처의 개입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범위와 규모에 대해서도 여전히 정부 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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