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구멍뚫린 안전망]
④ 5가지 과제
조선업 구조조정의 파고가 이미 하청노동자들을 덮치고 있지만, 고용안전망은 허술하고 구멍투성이다. <한겨레>는 전문가들과 노동계의 의견을 종합해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해 시급한 다섯가지 과제를 제언한다.
① 사문화된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부터 살려내자
현재 조선업 구조조정의 첫번째 희생양이 되고 있는 이른바 ‘물량팀’(재하청 계약직노동자)들은 절반 정도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현행 고용보험법은 임금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제13조) 설계돼 있다. 사업장이 폐업했더라도 노동자가 고용센터에서 증빙자료(급여명세서와 급여통장)를 제출해 피보험자격(노동자)을 확인하고 밀린 보험료(월 임금의 0.65%)를 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연 1500명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정부가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제도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물량팀처럼 자주 사업장을 옮기고 하청·재하청으로 얽히고설킨 경우는 증빙서류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3일 “조선업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제도로 실업급여를 탈 수 있도록 조선소 입출입기록이나 급여통장 내역 등 증빙서류를 조직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노조, 대우조선노조, 삼성중공업 직장협의회 등 9개 조선업체 노조가 모인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련)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수급권 청구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 고용보험 가입은 사업자의 의무이자 노동자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② 실업급여 사각지대 축소, 급여 현실화하자
2015년 3월 현재 임금노동자(1880만명) 가운데 고용보험 가입 비율은 64%(1204만명)에 그친다. 공무원, 특수형태노동자, 65살 이상 등 법적으로 제외되는 부분 외에 280만명가량은 사업주나 노동자가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고용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경우다.
실업급여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현재 정부가 저소득 노동자에 대해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사업’ 등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는 고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자발적 이직자, 무급 휴직자 등에 대해서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실업급여 수급 자격인 ‘실직 전 1년6개월 동안 180일 이상 고용보험료 납부’라는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업급여 지급 액수와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직 전 임금의 50%를 주는 현행 실업급여는 상한액(일 4만3000원)과 하한액(최저임금 90%)이 정해져 한 가구의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부족한 액수다. 90~240일로 정해져 있는 지급기간 역시 재취업을 충분히 준비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증빙서류 구하기 쉽지않고
제도 있는지 몰라 ‘사문화’
민주노총 “조직적 지원 계획” 실업급여 수급자격 낮추고
지급액수 현실화도 급선무 ③ 직업훈련·재취업지원 내실화하자 실업자를 위한 직업훈련이나 재취업 지원 등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현재 어느 정도 틀은 갖춰졌지만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구직자의 적성이나 경력에 적합하고, 산업수요에 맞는 훈련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규모 실업이 예상되는 조선업의 경우에는 특별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진호 울산발전연구원 창조경제연구실장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할 때 전직·재취업 지원을 강화해 해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강순희 경기대 교수(노동경제학)는 “조선업 노동자들의 경우 대상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이 패키지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④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검토하자 임금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높인다고 해도 안전망에서 구조적으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취업을 한번도 하지 않은 청년들, 장기구직자들, 영세자영업자 등이다. 영세자영업자는 폐업률이 높아 고용불안에 시달리지만 고용보험 틀 안에서 지원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60만명이 넘는 취업준비자나, 희망퇴직한 중고령자도 기본적으로 안전망 제도 밖에 머물고 있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광범위한 사각지대 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업부조란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가 아닌 구직자들에게 구직활동 등과 연계해 수당 등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병희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 현금급여를 결합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 강화하자 해고 대신 휴업·휴직을 선택하는 회사에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의 경우 법률상 제도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시행령으로 규정해 정부가 국회의 동의 없이 지원 요건과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이 10배 이상 급증하자 정부는 지원 요건을 매출액·생산량 ‘10% 감소’에서 ‘15% 감소’로 강화했고, 그 뒤 지원금 지급이 줄어들었다. 유사한 제도인 독일의 조업단축지원금 제도는 요건과 내용이 법률로 상세히 규정돼 있다. 또 독일 조업단축지원금처럼, 노동자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휴업·휴직을 하면 회사가 임금의 70%를 노동자에게 주고, 정부가 40%를 회사에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직접 조업단축지원금을 청구한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근로자의 생활소득을 보전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는 불황 시 기업이 해고 대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끝> 정은주 박태우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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