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9 21:17
수정 : 2016.06.21 11:02
반기문 주말 정치적 행보
‘충청 대망론’에 화답하고
‘영남 연합론’에 힘 실어줘
“여권 대선주자 없는 상황서
반총장 기선제압 효과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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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부인 유순택씨가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에서 경상북도와 하회마을이 준비한 주목을 기념식수하고 있다. 안동/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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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주말인 28~29일 이틀 동안 드러내놓고 정치적 행보를 폈다. 충청 정치권을 대표해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만나고 여권의 지지 기반인 경북 지역을 방문했다. 정치권 주변에선 “방한 목적 자체가 작심하고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각인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거침없는 정치적 행보 29일, 반 총장이 방문한 경북 안동 하회마을 입구에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들어간 환영 펼침막이 걸렸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그를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맞았다. 반 총장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에서 기념식수를 한 뒤 “서애 류성룡 선생님의 깊은 나라사랑 정신과 투철한 공직자 정신을 기리면서 모두 다 함께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명록에도 이런 취지의 글을 적었다. 반 총장은 ‘대선 도전과 관련있는 거냐’란 취재진의 물음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반 총장은 김관용 경북지사, 김광림 의장 등과 오찬을 한 뒤 하회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경북도청 신청사를 예정에 없이 방문했다. 저녁엔 경주로 향해 유엔 엔지오(NGO) 콘퍼런스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하루 새 새누리당 지지기반인 경북의 두 지역을 방문한 것이다.
전날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은 28일 오전 서울 신당동 김종필 전 총리 자택을 전격 방문했다. ‘내년에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강하게 시사한 뒤 사흘 만에 충청의 대표 정치인인 김 전 총리를 만난 것이다. 애초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충청 대망론’ 등 각종 정치적 해석을 우려해 김 전 총리와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회동을 제안한 것은 반 총장 쪽이었다. 두 사람은 30분 동안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회동 뒤 반 총장은 기자들에게 “국가 원로이고 대선배님이시니 인사차 들렀다”고 말했다. ‘대선이나 충청 대망론 관련 얘기를 나눴느냐’는 물음에 “그런 말씀은 안 나눴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비밀 이야기를 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반 총장은 주요 사안이 있을 때 김 전 총리와 상의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충청 출신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충청의 맹주라는 상징성이 있는 김 전 총리를 찾곤 했다.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게 아니라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반 총장은 고건, 노신영, 이현재, 한승수 전 총리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등 정·재계, 언론계 원로급 인사 14명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시간가량 만찬을 했다. 참석자들은 “주로 유엔 활동에 관해 이야기했을 뿐 대선이나 국내 정치 관련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을 아꼈다. 노신영 전 총리는 반 전 총장이 멘토로 여기는 인물이다.
■ “반반 아니라 ‘대선 70% 총장’”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의 행보가 예상보다 노골적이고, 빠르고 치밀한 준비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 새누리당 서울지역 의원은 “반 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을 작심하고 방한한 것”이라며 “총선 참패 뒤 당내 대선 주자들이 없는 무주공산의 상황에서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 기선 제압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선 시간표로 보면 올 연말까지가 출마 준비, 내년 7월까지가 당내 경선, 8~12월이 본선이다. 반 총장으로선 1단계인 지금 내년 대선에 나간다고 알리는 것이 최대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내년 초쯤으로 출마 선언을 미뤘겠지만 상황이 변하면서 시간을 당긴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일부에서 구상하는 ‘대구·경북(TK)-충청’ 연합구도에 반 총장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충북이 지역구인 정우택 의원은 “반 총장이 더는 ‘반반 총장’이 아니라 대선 출마로 기운 ‘60~70% 총장’이 된 거 같다”며 “특히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고 경북 안동, 경주를 방문한 것은 ‘티케이-충청 연합’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라고 말했다.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반 총장의 광폭행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프랑스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뤄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총선 패배 뒤 현재 권력과 당내 질서도 유지하는 방법으로 청와대가 반 총장에게 ‘당신이 미래권력이다’라는 신호를 보냈고, 반 총장도 이에 호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몰아치듯 거침없는 그의 정치 행보를 두고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지역주의에 기대는 듯한 행보에는 비판이 많다. 한 새누리당 서울지역 의원은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수장이라는 분이 스스로 김 전 총리를 만나 충청 대망론이라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경북 지역을 방문해 지역정서에 기대고 있다. 전형적인 구태 정치”라고 말했다. 반 총장 영입에 적극적인 홍문표 사무총장도 “충청 대망론을 너무 강조할 일이 아니다”라며 “너무 지나치면 역풍이 불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반 총장의 말과 행동이 너무 앞서 검증에 일찍 노출되고 향후 있을 수 있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자칫 ‘친박계 후보’로 고립돼 버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성연철 기자, 안동/김일우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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