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1 17:06
수정 : 2016.06.22 10:50
시민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을 버렸다”
권영진 대구시장 “유감 넘어 분노 느낀다”
“영남권 신공항은 밀양으로 확정됐습니다.”
21일 오후 3시 대구시 동구 신천3동 대구상공회의소 10층 회의실. 국토교통부의 영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 연구 용역 최종 발표를 앞두고 ‘예행연습’이 한창이었다. ‘남부권 신공항 범 시·도민 추진위원회’ 이수산 사무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치자 40여명의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하늘길이 살길이다’라고 적힌 부채와 ‘신공항 건설로 대기업 유치’, ‘신공항이 대박’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다.
이들의 기대감이 허탈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텔레비전 뉴스에는 ‘영남권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흘러나왔다. 신공항 입지가 경남 밀양으로 결정될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동안 침묵만 감돌았다. “더이상 들을 필요 없습니다. (텔레비전) 꺼주세요.”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흥분한 사람들은 “정부는 이 사기극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시 공약은 지키고 왜 신공항 공약은 안 지키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 져야 한다. 대구·경북이 핫바지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을 버렸다. 이 정부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남부권 신공항 범 시·도민 추진위원회’ 강주열 위원장은 “참담한 심정이며 또다시 대국민 사기극에 마음이 아프다. 저희들은 오늘 이 결과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수산 사무총장은 “오전까지만 해도 신공항이 밀양으로 온다고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친박’ 서병수 부산시장의 보이지 않은 영향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 신공항 대국민 사기극을 강력히 규탄한다”, “남부권 신공항을 재추진할 것을 결의한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해산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일호 밀양시장은 이날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오후 4시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전으로 돌려놓은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다”라고 비판했다. 권 시장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 정부마저도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시켜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용역과정을 철저히 검증하고 곧 부산 등 5개 시·도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밀양시가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11만 시민과 함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 또 한번 밀양시민을 우롱한 결정에 밀양시민은 분노한다”며 허탈해 했다. 박 시장은 “김해공항을 확장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그런 결정을 해야 했다. 한번도 아니고 또 한 번의 논의를 하면서 밀양시민을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누가 정부를 믿겠나? 정부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밀양을 지지했던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유감이나 아쉬움만 나타냈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국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했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유감스럽고 아쉽지만 정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보고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정치적 결정이지만 수용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앞으로) 신공항 관련해 또다른 약속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남사람들이 일치단결해 매장시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공항 후보지였던 밀양 하남읍 수산리 대평마을의 김창복(63) 이장은 “밀양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좀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처럼 당장 신공항이 들어서서 갈데가 없는 나이 든 주민들 입장에서는 가장 잘 된 결정 같다”고 말했다. 밀양시 하남읍 백산리 송산마을의 김태석(55) 이장은 “머리 좋은 사람들이 결정했을 것이니, 찬성·반대 의견 없이 그 결정에 따르겠다. 다만 그 결정이 정치적 판단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 발전을 위해 것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정의당 대구시당은 논평을 내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론에 앞서 이번 신공항 사태를 야기한 모든이가 책임부터 져야한다. 공항사업을 선거용 미끼로 지역주민들을 낚은 박근혜 대통령부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구/김일우 최상원 구대선 신동명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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