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04 01:16
수정 : 2016.07.04 11:25
지난해 10월22일 서별관회의 문건 단독 입수
분식회계 인지하고서도 규명은 뒤로 미뤄
산은, 엉터리 장부 놓고 4조원 지원 방안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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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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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말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한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체)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 문제에 대해 집중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특별감리 착수 등 별다른 결론은 내리지 않고 대응을 미룬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4조2천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뼈대로 한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규모 분식에는 눈감은 채 나랏돈을 종잣돈으로 하는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부터 이뤄진 셈이다.
3일 <한겨레>는 지난해 10월22일에 열린 서별관회의에 제출된 대우조선해양 관련 문건을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했다. 금융위원회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대우조선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되어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감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는 언급과 함께 대우조선 분식 의혹과 관련된 그간의 경과가 담겨 있다. 문건에는 “금융감독원이 그간 자발적 소명 기회를 부여했으나 회사(대우조선)는 소명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라고 적혀 있다. 상장회사가 금융감독당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이런 행태는 대우조선이 힘있는 권력기관에서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들의 영향력을 뒷배경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에는 대우조선이 금감원에 자료 제출을 꺼린 이유도 담겨 있다. 금감원이 회계 감리에 착수하게 되면 회사의 신용도가 하락하고, 수주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이미 수주한 물량도 취소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대우조선의 주식이나 채권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의 법적 소송마저 예상된다고 대우조선 쪽이 주장했다고 한다. 특히 산업은행은 투자자 소송 규모가 최소 5800억원, 최대 1조1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도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이외에 감사원이 산업은행의 감사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일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조사를 검토 중이라는 내용과 검찰이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을 배임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언급돼 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대우조선의 수조원대 분식 혐의에 대한 뚜렷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외려 “산은의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 진행 상황을 감안해 금감원이 감리 개시 여부를 결정해 추진한다”고만 돼 있다. 기업의 회계 분식을 엄격히 처벌해야 할 의무를 지닌 금융감독당국이 분식 혐의를 파악하고서도 자본시장과 기업 경영의 근본을 흔드는 분식 행위에 대한 대응을 뒤로 미룬 것이다. 실제 금감원의 감리는 자료 제출 기피로 결정되지 못하다가 실사 결과가 나온 뒤인 12월10일에야 결정됐다. 이어 감사원이 산은에 대한 감사를 펼치다 1조5천억원의 분식회계 의혹을 금감원에 통보하자 정밀 감리에 들어갔다.
대우조선의 분식 규모는 아직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감사원은 지난달 감사 결과 발표에서 분식 규모가 1조5천억원에 이르며, 산은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검찰 안팎에선 분식 규모가 5조원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확한 분식 규모는 금감원의 회계 감리가 끝난 뒤에 가늠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식을 정확히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통상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날 서별관회의는 대우조선의 정상화 방안을 놓고 관계 부처와 청와대 당국자가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일주일 뒤인 10월29일 산은은 4조2천억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안이 포함된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산은의 발표문에도 분식 문제가 언급돼 있었으나, “금감원이 (외부 기관의) 실사 결과 등을 검토한 뒤 향후 감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이날 회의의 전제가 되는 외부 회계법인의 실사에도 대규모 분식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고, 또 당국은 조 단위의 분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논의까지 했음에도 별다른 조처 없이 대우조선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은 대목이다. 부실 기업 구조조정은 그간 숨겨왔던 부실부터 드러낸 이후 그에 맞춰 퇴출 여부나 지원 수준을 정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정부는 분식 규명은 뒤로 미루면서 엉터리 장부와 그에 기초한 실사 결과를 놓고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했다. 구조조정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홍익표 의원은 “대우조선에 분식이 있음을 인지한 상황에서도, 4조원이 넘는 나랏돈을 투입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수조원에 이르는 분식 규모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막대한 나랏돈이 들어가게 된다면, 청와대와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락 송경화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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