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 영국의 한 언론사 사이트를 만들 때의 일이다. 일정은 촉박한데 급히 카드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결제대행 연결에 ‘스트라이프'란 서비스를 끌어다 쓰기로 했는데, 이 서비스는 액티브엑스나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고, 카드사 별도 인증 절차도 없는 매우 간단한 결제대행 서비스였다. 한국과 달리 간단한 결제가 가능한 만큼, 그 뒤에는 한국만큼이나 복잡한 정부와의 협의 절차와 많은 코드가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인도 개발자를 찾아 연동개발을 맡겼는데, 다음날 인도 개발자가 하루 만에 건네준 코드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간단한 코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구현해도 별문제 없는 건가 싶어 테스트를 거치던 와중에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결제가 취소되겠거니 하며 큰 금액을 적어 결제테스트를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결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이루어져도 법적·기술적 문제가 없는 것이냐고 스트라이프 개발자를 직접 찾아 물어보고 난 뒤, 나는 이제껏 한국에서 겪어온 고생들은 다 뭐였나 싶어 허탈해졌다. 한국에서 온라인 결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지불대행회사(PG사)와 시스템을 연동한 뒤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안정성을 확인하고, 이후 피지사로부터 심사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지사는 사업자등록번호나 통신판매업신고번호, 회사 대표자 성명 등이 사이트 하단에 잘 기재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판매되는 상품이 피지사가 허용하는 상품인지도 점검한다. 피지사 점검 이후에는 카드사 심사 절차를 또 거쳐야 하는데, 만약 이를 생략하고 싶다면 돈을 들여 보증보험을 따로 가입해야 한다. 피지사는 판매상품 종류에 따라서 결제 한도에 제한을 걸기도 한다. 게임코인이나 고객들이 직접 금액을 정하는 크라우드펀딩 상품을 팔고 싶다면 별도 추가 협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고객 역시 공인인증서니 보안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과 늘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영국에서 사이트를 만들고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금융권과 아무런 협의 과정도, 아무런 계약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아무런 보증보험도 필요 없었고, 전화 한 통조차도 필요 없었다. 고객들도 공인인증서 따위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진입 장벽이 낮으니 핀테크 시장에 도전하는 혁신기업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포켓몬 고’ 게임이 세계를 뒤바꾸는 광경을 보며 많은 한국 개발자들이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내 업체의 반대로 구글이 한국 지도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해외 게임에서 국내 지도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위치정보서비스사업자 신고도 내야 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도 받아야 하니 무슨 게임이든 한국만 출시나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것도 늘 반복되어온 일이다. ‘한국형’만 외치다 한국만 세계 시장과 분리되어 갈라파고스가 되어가고 있음을 정책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와 함께하기는커녕, 한국만의 표준을 만들고는 우리 기술을 한류로 만들자는 헛된 구호만 쏟아냈다. 게임, 아이티(IT), 핀테크 산업마다 ‘한국’이라는 장벽을 세워놓고 ‘주권’이라 주장해온 것들이 어쩌면 흥선대원군식 쇄국정책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볼 때다. 구글이나 페이팔은 대동강에 쳐들어온 이양선이 아니다. 이것이 ‘포켓몬 고’가 주는 마지막 경고다.
칼럼 |
[2030 잠금해제] ‘포켓몬 고’의 경고 / 이준행 |
프로그래머 영국의 한 언론사 사이트를 만들 때의 일이다. 일정은 촉박한데 급히 카드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결제대행 연결에 ‘스트라이프'란 서비스를 끌어다 쓰기로 했는데, 이 서비스는 액티브엑스나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고, 카드사 별도 인증 절차도 없는 매우 간단한 결제대행 서비스였다. 한국과 달리 간단한 결제가 가능한 만큼, 그 뒤에는 한국만큼이나 복잡한 정부와의 협의 절차와 많은 코드가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인도 개발자를 찾아 연동개발을 맡겼는데, 다음날 인도 개발자가 하루 만에 건네준 코드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간단한 코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구현해도 별문제 없는 건가 싶어 테스트를 거치던 와중에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결제가 취소되겠거니 하며 큰 금액을 적어 결제테스트를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결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이루어져도 법적·기술적 문제가 없는 것이냐고 스트라이프 개발자를 직접 찾아 물어보고 난 뒤, 나는 이제껏 한국에서 겪어온 고생들은 다 뭐였나 싶어 허탈해졌다. 한국에서 온라인 결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지불대행회사(PG사)와 시스템을 연동한 뒤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안정성을 확인하고, 이후 피지사로부터 심사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지사는 사업자등록번호나 통신판매업신고번호, 회사 대표자 성명 등이 사이트 하단에 잘 기재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판매되는 상품이 피지사가 허용하는 상품인지도 점검한다. 피지사 점검 이후에는 카드사 심사 절차를 또 거쳐야 하는데, 만약 이를 생략하고 싶다면 돈을 들여 보증보험을 따로 가입해야 한다. 피지사는 판매상품 종류에 따라서 결제 한도에 제한을 걸기도 한다. 게임코인이나 고객들이 직접 금액을 정하는 크라우드펀딩 상품을 팔고 싶다면 별도 추가 협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고객 역시 공인인증서니 보안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과 늘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영국에서 사이트를 만들고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금융권과 아무런 협의 과정도, 아무런 계약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아무런 보증보험도 필요 없었고, 전화 한 통조차도 필요 없었다. 고객들도 공인인증서 따위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진입 장벽이 낮으니 핀테크 시장에 도전하는 혁신기업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포켓몬 고’ 게임이 세계를 뒤바꾸는 광경을 보며 많은 한국 개발자들이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내 업체의 반대로 구글이 한국 지도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해외 게임에서 국내 지도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위치정보서비스사업자 신고도 내야 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도 받아야 하니 무슨 게임이든 한국만 출시나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것도 늘 반복되어온 일이다. ‘한국형’만 외치다 한국만 세계 시장과 분리되어 갈라파고스가 되어가고 있음을 정책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와 함께하기는커녕, 한국만의 표준을 만들고는 우리 기술을 한류로 만들자는 헛된 구호만 쏟아냈다. 게임, 아이티(IT), 핀테크 산업마다 ‘한국’이라는 장벽을 세워놓고 ‘주권’이라 주장해온 것들이 어쩌면 흥선대원군식 쇄국정책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볼 때다. 구글이나 페이팔은 대동강에 쳐들어온 이양선이 아니다. 이것이 ‘포켓몬 고’가 주는 마지막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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