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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2 18:10 수정 : 2016.08.05 09:37

“수당받으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몇시간이나 덜 해도 되는지 계산했더군요”
서울시 청년수당 심사위원들에게 들어보니…“무너진 삶 흔들리는 마음이 느껴져”

통계가 보여주지 않은 ‘인생이야기’를 읽은 심사위원들은 청년의 삶이 생각보다 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주 발표 예정인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시정명령·직권취소 등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는 노동전문가·서울시 산하기관 관계자·구청 사회복지사·청년단체활동가·서울시 청년지원조직·청년창업가 등 청년활동 지원자를 뽑은 심사위원 6명의 말을 들어봤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하루 서울시청 시민청에 모여 3300명의 지원서를 나눠 읽었다. 서울시가 6309명의 전체 신청자 중 소득과 미취업 기간 등을 기준으로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 놓인 3300명을 우선 선정했고, 24명의 심사위원들은 개인 신상은 가린 채 지원동기(300자)·활동계획(40자)·활동목표(300자) 등 지원서 내용을 살펴 3000명을 뽑았다.

신청자의 평균 나이는 26.4살, 가구 건강보험 평균 납부액은 직장 8만3011원, 지역 7만920원이다. 가구 소득으로 바꾸면 직장가입자는 268만원, 지역가입자는 207만원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청년들이다.

■ 50만원 받기 위해… 6명의 심사위원은 지원서를 읽으며 청년의 무너져 있는 삶, 안정적이지 않은 심리상태가 느껴졌다고 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ㄱ(38)씨의 첫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젊은이들이 50만원을 받기 위해 가난하고 힘든 상황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ㄱ씨는 “누구 하나만 기억나지 않을만큼 사정이 비슷하게 어려웠다. 청각장애가 있어 취업이 어렵다는 청년이 특별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청년단체활동가인 ㄴ(36)씨는 안타깝게 탈락시킨 한 지원자를 기억했다. 보다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대학진학을 하고 싶은데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이 없어 꿈꾸기도 어렵다는 사연이었다. 하지만 ‘취업 또는 창업활동, 진로 모색, 역량 강화에 대해 직·간접적 활동 의지가 드러나야 한다’는 기준으로 ‘재산축적, 학위취득, 유흥·도박 활용’ 등의 사례가 드러나는 지원서는 탈락시켰다. 대학 진학도 구직 역량강화활동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학위취득을 앞세운 지원자는 탈락시킬 수밖에 없다는 원칙에 따랐다.

청년창업가인 ㄷ(32)씨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의 특징대로 ‘부의 대물림’ 현상을 자주 확인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 생활을 포기하고 살다가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교육기회가 없어져버렸다는 지원자, 6개월동안 50만원씩 받는다면 편의점에서 1달에 80시간 알바를 덜 해도 된다고 직접 계산해 적은 지원자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ㄹ씨는 “어떤 청년은 취업을 위해 교육비가, 어떤 청년은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사정이 다 다른데,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모두의 목표는 공무원·경찰·선생님? 심사위원들은 활동 계획과 목표 항목 내용의 획일화가 눈에 띄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활동 계획·목표 항목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공부(4487건), 준비(3873건), 취업(2516건), 학원(3331건), 자격증(2938건), 스터디(2492건), 토익(2406건)’ 등이라고 소개했다. 청년들의 빈곤한 상상력은 이후 사회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관론과 그만큼 경쟁에 내몰린 청년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동전문가인 ㅁ(43)씨는 “지원서 분량이 워낙 짧고 복지부의 수정 요구대로 취업의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80~90%의 지원자가 어학성적·자격증 등 스펙쌓기에 집중하고 싶다거나, 공무원·경찰·교사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답한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청년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라는 방증이 아닌지, 정부가 앞장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청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ㅂ(31)씨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 스펙을 쌓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의 상태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ㅂ씨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자기 흐름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청년은 거의 없었다. 조금 앞선 세대로서, 스펙쌓기가 답은 아닐텐데 싶다가도, 그마저도 안 하면 불안하니까 이해가 됐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2일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해 청년활동지원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과 10여분 토론도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답답함과 불통의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주 중 사업 대상자 3000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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