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4 20:52
수정 : 2016.08.15 10:03
정부 용역보고서 보니
취업성공패키지 참여한 청년들
스스로 일자리 구한 비율 80% 넘어
전문가 “취업패키지만 정답 아냐
청년수당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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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에 항의해 대형 펼침막과 광고판을 내거는 데 맞서 정부는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청년 일자리 사업을 강조하는 대형 펼침막을 걸었다.(아래) 같은 날 태평로 서울도서관 외벽엔 서울시 쪽의 대형 펼침막이 보인다.(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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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청년활동비(청년수당) 지급을 직권취소한 정부가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 사업을 부각시키며 연일 ‘청년수당 때리기’에 나선 가운데, 취성패가 청년 구직자의 취업알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취성패 사업을 운영하는 민간위탁기관의 역량이 부족한 탓에 청년 참여자들이 스스로 취업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12일 취성패 참여자에게 최대 60만원 현금 지원을 발표하면서 위탁기관이 책임지는 이 사업이 서울시 청년수당과 다르다고 주장한 바 있어,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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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기관 역량 부족해 1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수탁연구과제로 펴낸 ‘근로빈곤층 대상 고용-복지 서비스 연계 강화(취업성공패키지를 중심으로)’ 보고서(2015년 12월)를 보면, 청년과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취성패Ⅱ에선 “위탁기관에 의한 취업알선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청년들 본인에 의한 취업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분석돼 있다. 일부 위탁기관은 청년 본인 취업 비중이 80~90% 이상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도 “위탁기관이 직업교육과 취업준비를 지원하지만 청년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스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인정했다.
청년 구직자가 직접 일자리를 찾는 이유는 위탁기관이 구인처를 발굴하거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미흡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위탁기관은 워크넷과 같은 전산 화면만 보고 있다. 제대로 사업을 하려면 기업 협력 파트가 따로 있고 전담자가 기업체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취업)알선을 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러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정부는 청년층(18~34살)과 중장년(최저생계비 250% 이하)이 참여하는 취성패Ⅱ 사업 전체를 위탁사업으로 변경한 바 있다. 기존에는 취성패Ⅱ를 고용센터가 운영하고, 기초생활수급자·차차상위(최저생계비 150%) 이하 저소득자 등의 취업을 지원하는 취성패Ⅰ을 위탁기관이 맡아왔다. 보고서는 “기존 위탁기관은 취약계층 중심으로 사업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축적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대상자가 청년층 중심으로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대상자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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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패와 청년수당 비슷 고용부와 청년희망재단은 최근 취성패 3단계인 ‘취업알선단계’ 참여자 가운데 저소득층과 적극적 구직활동자에게 취업에 필요한 정장 대여료, 사진 촬영비, 숙박·교통비 등을 월 최대 20만원씩(3개월) 실비로 추가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취성패는 진단 경로설정인 1단계에서 참여수당 20만~25만원, 2단계 직업훈련 등 의욕능력증진 과정에서 훈련비용 40만원씩(6개월)을 지급해왔다. 이에 비해 서울시 청년수당은 활동계획서를 통해 취업·창업과 진로모색 등을 밝힌 청년 구직자에게 월 50만원씩(6개월) 지급하며, 교통비, 교재비, 학원비, 식비 등 취업 활동과 관련한 일에만 체크카드로 써야 한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청년수당은 개인의 자율적 계획에 따라 집행돼 취업과 관계없는 지원이 이뤄져 누수가 생기기 쉽지만 취성패 참여자 지원은 (위탁기관) 상담원의 상담을 거쳐 실제 지원이 필요한 청년구직자를 추천하고, 상담기관과 고용센터가 사전·사후에 점검해 누수가 최소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성패 취업알선도 청년 본인이 스스로 찾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실제 운영 방식은 서울시 청년수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4일엔 새누리당 청년 최고위원까지 ‘청년수당 때리기’에 가세했다. 유창수 새누리당 청년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 청년수당은 사전·사후 관리에 구멍이 났고 실효성도 담보하지 못하는 ‘현금살포 청년수당’이다. 정부의 대표적 청년일자리 정책인 취성패는 상담, 직업훈련, 취업알선 3단계 지원으로 78%의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예산처는 고용부가 제출한 올해 추가경정예산 사업을 분석하며 취성패의 “고용유지율과 일자리 질이 다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4년 취성패 사업으로 취업한 청년 4만3372명(취업률 64%) 가운데 1년 이상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45.5%이며 임금 수준도 150만원 미만이 46.7%에 이르기 때문이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만 18~29살 청년 7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취성패 만족도는 6.11점(10점 만점)으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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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 필요한 때” 전문가들은 서울시와 정부 어느 쪽이 ‘정답’이 아니라, 청년들의 다양한 필요에 맞춘 창의적인 정책실험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청년에게 필요한 고용·복지정책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취업 취약계층에겐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은 청년에겐 자기주도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혜원 교원대 교수(노동경제학)는 “참여자가 구직활동에 전념하고 직업교육이나 취업활동에 적극 참여하려면 현금 수당이 필요하다”며 “(청년수당 논란 이후) 취성패 3단계에도 수당이 추가된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평했다.
유럽연합(EU)의 청년 보장 프로그램도 살펴보면, 나라별로 지역별로 다양하다. 대학 졸업자가 실업자로 등록되면 3개월 이내에 일자리를 제공하거나(핀란드), 저소득 청년에게 직접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하고(벨기에), 구직활동과 직업교육에 참여하면 현금 보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프랑스). 청년이 실업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그들(청년)의 뜻대로” 고용, 학업, 직업훈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17개국이 참여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유럽의 청년 보장 프로그램은 청년이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정은주 이경미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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