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4 17:29
수정 : 2016.09.04 18:53
“한진해운 협력업체와 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 준비해온 대책에 따라 부작용에 대응하겠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 지원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호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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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산 한진해운 신항만 터미널에 한진텐먼호가 외항에서 대기한 지 이틀 만에 입항해 접안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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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장담과 달리 지금 현장에서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항과 인천항에서 하역업체들이 대금 체불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해 한진해운 선박의 하역·선적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주요 항만에서도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을 거부하고 있고, 싱가포르에선 채권 확보를 위해 한진해운 선박을 압류했다. 4일 현재 한진해운 선박 141척 중 절반가량인 68척이 19개국 44개 항만에서 비정상적인 운항을 하고 있다. 한진해운에 화물 운송을 맡긴 수출입업체들은 납품 지연과 운임 폭등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됐다. 그나마 자체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도대체 무슨 대책을 세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그동안 한진해운의 자구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대주주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기업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1위 해운사를 법정관리로 보내는 결정을 할 때는 예상되는 문제들을 면밀히 살펴 대책을 꼼꼼히 마련해야 했다. 해운업계도 법정관리로 예상되는 피해 상황과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후폭풍을 경고해왔다. 지난 4월부터 ‘법정관리설’이 나왔으니 그동안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다.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4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해수부에서 운영 중인 ‘비상대응반’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9개 부처가 참여하는 ‘관계부처 합동 대책 태스크포스’로 확대 개편했다. 뒤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마련해 우선순위에 따라 차질없이 집행해야 한다. 계속 허둥대며 우왕좌왕하다가는 한국 해운업과 수출산업의 대외 신인도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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