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00일
[언론 부문] 전문가 11명에게 들어보니
방통위원장 임명까지 석달
방송개혁 밑그림 이제 그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해직기자 복직 등 국정과제
“큰 방향은 잘 잡았다” 중론
방송개혁 실행에 방통위 주목
“KBS·MBC 검사·감독권 발휘해
정권 맞췄던 적폐 청산해야”
이인호·고영주 해임 요구 거세
더디지만 흔들림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100일 동안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꾸준히 다졌다. 7월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에는 △해직언론인 복직과 명예회복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방법 등 지배구조 개선 및 보도·제작·편성의 자유 보장 등이 포함됐다.
<한겨레>가 접촉한 언론 관련 전문가 11명은 정부의 이같은 과제 선정이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공영방송 정상화’ 과제는, 언론 종사자는 물론 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등 대표 학회에서도 꾸준히 요청해온 사안이다. 촛불시민들이 요구한 ‘적폐 청산’의 주요 부분이기도 하다.
■ 방통위 구성에만 석달 ‘실행’은 더뎠다.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에만 석 달 걸렸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기구지만, 방송 독립성을 지키고자 위원 5명(정부·여당 추천 3명, 야당 추천 2명)의 합의체로 구성·운영된다. 정부는 출범 한 달 뒤인 지난 6월,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알박기’로 임명한 김용수 방통위원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으로 옮기고, 임기가 완료된 옛 야당 추천 몫의 고삼석 위원을 정부 몫으로 재임명했다. 옛 야당 몫 방통위원이 다수가 되는 기형적인 상황을 막은 ‘신의 한 수’로 평가됐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방통위원장 후보 지명은 정부 출범 두 달이 지난 지난달 3일에야 이뤄졌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8일 임명장을 받았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위원 추천 몫을 더 달라”는 자유한국당의 요구 탓에 두 달이 지나도록 위원 선임이 미뤄지고 있다.
우보천리(우직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인가 징갱취제(뜨거운 국에 데더니 냉채를 먹을 때도 분다)인가. 의미 해석은 엇갈린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국가정보원 적폐청산티에프(TF),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발족 등과 견주면, 방송 개혁은 방통위 구성에 그쳤다. 언론이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앞선 민주정부들은 모두 ‘언론개혁’을 추진하다가 자유한국당 전신 정당과 보수 언론의 비이성적 공격으로 국정 운영에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반면 문종대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은 “(100일은) 정부가 방송개혁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고용노동부가 노조 탄압 의혹이 분분한 문화방송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하는 등 합법적 조치를 잘 취했다”고 평가했다. 공기업 지분이 많은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 노사는 2008년 해직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의 복직 및 ‘공정방송’ 투쟁에 참여한 직원들의 명예회복 방안에 잠정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 “방통위 관리·감독 권한 발휘하라” 이제 방송개혁 실행을 둘러싼 요구는 방통위로 집중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이효성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방송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제가 오랜 세월 만난 적 없고, 개인적으로 안면도 없는 분을 방통위원장으로 모신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9년과 달리 이번 정부는 국민이 요구하는 ‘방송 정상화’가 우선 과제임을 분명히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창출의 ‘최대 공신’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해 방송 장악을 노골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선 판사 출신 최성준 전 방통위원장은, 공영방송을 둘러싼 숱한 비판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감독권을 발휘하라는 당시 야권 추천 위원들의 요구를 매번 묵살해 방통위의 공신력을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4기 방통위는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한국방송이사회·방송문화진흥회의 검사·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언론계 안팎으로 거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11일 성명을 내, 경영평가보고서 채택을 두고 석 달째 파행 중인 방문진을 사무검사하라고 방통위에 촉구했다. 야권 일부에선 방통위에 방문진 등의 검사·감독 권한이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오지만, 법제처는 이미 2002년 “방문진법 제16조 및 민법 제37조에 의해, 방송위원회(방통위의 전신)가 방문진에 대해 감독상 필요한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한 바 있다.
‘케이비에스(KBS)·엠비시(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14일 방통위에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 등의 해임을 청원하는 시민 의견을 제출했다. 방통위는 방송법·방문진법에 따라 한국방송·문화방송 이사를 추천·임명하며, 대법원은 방통위의 임명권에 ‘해임권’이 포함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효실 박준용 기자 trans@hani.co.kr
도움주신 분들
강형철 방송학회장(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초대 국회입법조사처장) ,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 문종대 언론정보학회장(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가나다 순)
미디어 공공성 되살릴 ‘컨트롤 타워’ 만드나 산업논리 치우쳐 방송경쟁력 위태
“시민참여기구서 중장기 방향을”
방통위원장, ‘미디어개혁위’ 가동 뜻 전문가들은 공영방송 정상화 말고도 정부가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과제로, 방송통신 통합 규제기구 마련 등 조직 개편과 관련 법제 정비를 꼽았다.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 발전을 책임질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강형철 방송학회장은 “국내 방송산업의 경쟁력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방송을 경제·민주·문화적 측면으로 나눴을 때, 이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미디어정책 진흥·규제 관련 업무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떼어내,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분산시켰다. 이로 인해 업무 분장 혼란과 비효율성, 방통위 무력화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박근혜 정권의 미래부가 공공성을 담보하기보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산업 논리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로서 모든 사항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구인데, 현재는 왜소하고 유료방송·통신 문제가 과기정통부로 넘어갔다. 1차 정부 조직 개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는데, 더는 미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를 아우를 중장기적 미디어 정책 마련의 장으로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하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매비우스) 사무국장은 “지난 9년 동안 방통위는 시청자단체가 아무리 면담을 요청해도 만나주지 않았고 일방적이었다”며 “새 정부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거버넌스를 지닌 시민참여형 논의기구를 만들어 방송개혁의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이런 기구를 만드는 일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방송광고 제도 개선을 포함해 방송의 공적 책무 강화, 방송통신 인터넷 융합 환경 대응, 미디어 균형발전 등 10년을 내다보는 미디어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며 “4기 방통위가 구성되면 ‘미디어종합개혁위원회’(가칭) 구성 여부 등을 포함해 각계 의견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위원들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대중 정부 땐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가 꾸려져 방송 독립과 개혁을 위한 법 제도를 논의했고, 노무현 정부 땐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던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꾸려져 관련 법제 정비에 기여한 사례가 있다. 김효실 박준용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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