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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4 21:46 수정 : 2017.08.15 00:49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사 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농성장에서 회원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 시작된 광화문 농성은 오는 20일에 만 5년이 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재인 정부 100일] 사회 부문
평온 되찾은 광장의 시민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위로…
대통령 진심 어린 노력에 감사”

최저임금 인상·비정규직 대책
사회적 약자 위한 정책도 반겨

고교 무상교육 등 밀린 과제엔
“행정부가 좀 더 의지 보여야”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사 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 농성장에서 회원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 시작된 광화문 농성은 오는 20일에 만 5년이 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재인 대통령님! 3대 적폐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대형 펼침막에 새긴 투쟁 구호는 과장없이 담백했다. 부양의무자 기준과 장애등급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며 5년째 서울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광화문공동행동)은 지난 5월 이후 예전 펼침막을 내렸다. “박근혜 퇴진이 복지다”라는 구호도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광화문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13일 저녁 광화문공동행동 농성장에서 만난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소장은 새 대통령에 대한 적잖은 기대를 드러냈다. “지난 석달간 문재인 대통령이 행정부 수장으로서 할 건 다 했다고 봐요. 세월호 교사 순직도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한테 위로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법·제도 개선이 아닌 영역에서는 정말 많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서 소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지상의 세월호 광장으로 향했다. 5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노란색 팻말이 눈에 띄었다.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 선생님, 순직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팻말에 갈무리된 방송화면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한 문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새 대통령 취임 96일째, 서울 광화문광장은 지상과 지하 모두 평온했다. ‘박근혜 탄핵’ 구호가 사라진 광장에는 일상의 언어가 차츰 뿌리를 내렸다.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문재인 정부 100일’을 “한국 사회를 향해 우리가 함께 진전시켜야 할 권리를 말하고, 행동으로 관철하고자 노력해온 시기”라고 규정했다. 지난 석 달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다시 서게 된 시기였다는 뜻이다. 과거 10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경험하며 그들은 여러 사회정책이 정치의 공간에서 왜곡될 때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지 제대로 경험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져야 할 보건복지부(복지부)는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뜻에 따라 ‘제2의 중동붐’을 열겠다며 ‘의료수출’에 앞장섰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대신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힘썼다. 수만명의 교직원이 조합원으로 몸담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부처는 고용노동부(고용부)였다. 해고를 쉽게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양대 지침’도 고용부가 발표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노동조건 개선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새 정부의 태도는 달랐다. 여러 논란을 뚫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1000원 넘게(1060원) 올렸다. 정부 부처나 산하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특권학교’ 논란을 빚는 자율형 사립고와 외국어고는 일반고로 전환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금지한다고 국정과제에 못 박았다. 송명숙 흙수저당 교육위원장은 “공교육 혁신과 학생의 미래를 책임져야 마땅한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린 것이 비정상이었다”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를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은 당연한 조처”라고 말했다. 복지 분야에서는 미용과 성형이 아닌 모든 치료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나왔다. 의료수출 대신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문재인 정부 100일을 겪으며, 정권 교체가 단숨에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은 시민도 있다. 예컨대 복지부는 10일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네 가지 정부 지원 항목 가운데 주거급여에 대해 내년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앤다고 밝혔다. 나머지 세 항목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덧붙였다.

복지·시민단체들의 반응이 싸늘했다. 정부가 밝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주거급여와 장애인, 노인 가구한테만 해당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말은 하는데, 지금 복지부가 말하는 폐지는 기껏해야 완화에 가깝다”고 짚었다.

문 대통령이 주요 교육공약으로 제시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별다른 논란이 없는데도 2020년 이후, 그것도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쪽으로 후퇴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철회와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광화문공동행동 소속 회원 100여명은 14일 광화문역 지하보도를 잠시 벗어나 서울 종로구 효자동파출소 앞까지 나아갔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약속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려던 그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다시 서기현 소장의 말이다.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많이 아쉽습니다. 수많은 촛불의 염원으로 탄생한 정부 아닙니까. 저소득층과 장애인·노동자 등을 위해 이제 법·제도 개선의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농성을 접을 일은 없을 겁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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