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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7 10:46 수정 : 2017.08.17 20:20

세월호 유가족·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앞에서 머리 숙여
‘인사논란’ 때는 사과 대신 정면돌파하기도

고개를 숙이거나 꼭 안아줍니다. 무릎을 굽히며 눈을 맞추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와 독립유공자 등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는 방법입니다. 청와대로 초청해 직접 이야기를 듣고, 공식 행사에선 가장 중요한 자리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광경입니다. 유난히 사과 앞에 ‘최초’란 말이 붙는 이유입니다. 취임 이후 100일 동안 사과하고 또 사과한 문 대통령의 행보를 ‘그래픽뉴스’로 정리했습니다.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초청 간담회 자리였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며 ‘정부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부는 국회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마지막 한 분을 찾아낼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정부를 대표해 머리 숙여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8월16일

문 대통령은 이날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박근혜)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씻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주일 전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등 15명을 청와대에 초청한 뒤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건이 처음 발생한 건 2011년, 6년 만에 처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결과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피해 사례들을 빨리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들과 제조기업 간의 개인적인 법리관계라는 이유로 피해자들 구제에 미흡했고, 또 피해자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8월8일

문 대통령은 또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통령이 직접 끝까지 챙겨나가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서면브리핑으로 “슬픈 사연들이 많은데 관계 기관들이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억울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피해조사 추가 접수를 비롯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고만 밝혔습니다.

같은 해 5월, 윤성균 전 환경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국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끝내 “죄송하다”는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국가가 외면하거나 홀대했던 분들을 직접 청와대로 초청하기도 합니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14일에는 독립유공자 분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찬 행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을 사라지게 하겠다”며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4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3명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안창호 선생의 손자 로버트 안씨 부부 등 240여명이 초청됐습니다.

앞서 문 대통령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도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파독 광부·간호사, 6·25전쟁 영웅 유족, 민주화 운동 희생자 등 260명을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이날 국방부 의장대가 직접 참석자들을 맞이했는데요. 청와대의 민간인 초청행사에서 의장대가 나선 건 이날이 처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령층의 어르신과 인사를 나눌 때는 무릎을 낮추며 눈높이를 맞췄다고 합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제대로 대접받아야 하는 게 대통령으로서 저의 소신이고 분명한 의지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6월15일

■ ‘대통령 옆자리’가 달라진 공식행사

청와대 오찬이 아닌 공식 행사에서도 이전 정부에선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 눈에 띕니다.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선 문 대통령 부부 양 옆자리에 박유철 광복회장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앉았습니다. 두 사람 외에도 독립유공자들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일본 군함도 생존자인 강제징용 피해자 이인우·최장섭 할아버지 등이 함께 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께,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8월15일

현충일 추념식에서도 통상 4부 요인(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이 앉았던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했습니다. 지난해 지뢰 사고로 우측 발목을 잃은 공상군경인 김경렬씨와 2년 전 북한의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당시 다친 김정원·하정원 국가 유공자입니다.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중략)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6월6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선 문 대통령의 ‘돌발행동’도 있었습니다. 광주항쟁 당일 태어난 김소형씨의 추모사 낭독이 끝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씨에게 다가간 겁니다. 문 대통령은 그를 위로하며 포옹했습니다.

“울지마세요. 기념식 끝나고 아버지 묘소에 참배하러 같이 갑시다.”-5월18일

문 대통령은 약속대로 기념식이 끝난 뒤 김씨와 함께 아버지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김씨는 “아빠가 안아준 것처럼 어깨가 넓게 느껴졌다. 어깨에 기대 목 놓아 울고 싶었다”고 포옹 순간을 회고했습니다.

■일본·야당 앞에선 사과 대신 ‘정면돌파’

하지만 문 대통령이 언제나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닙니다. 사과를 직접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 6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28 위안부 합의’를 두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위안부 합의는 우리 한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특히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부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6월21일

취임 초기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사과 대신 정면돌파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지난 5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자 문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과 국민께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고위공직자 배제 5대 인선원칙은)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맞섰습니다.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 국회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인사청문경과 보고서 채택을 거부했지만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야당이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의 책임론까지 요구하자 이렇게 대응했죠.

“대통령과 야당이 인사에 관해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대통령과 승부 또는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치 못하다. 이런 것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6월18일

딱 한 번 ‘대리사과’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7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을 ‘머리자르기’라고 표현하자 국민의당이 반발,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과 전병헌 정무수석이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동철 원내대표를 찾아 사과의 뜻을 전했고 국민의당은 이를 수용, 국회 일정에 복귀했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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