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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19:00 수정 : 2019.06.15 01:06

스웨덴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의회 제2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8년작 <산문시 1> 인용…한반도 평화공동체 의지 담아
“대통령 이름 잘 몰라도, 새·꽃·지휘자 이름은 훤하더란다”

스웨덴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의회 제2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그 중립국에서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는 나라.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스웨덴 의회에 모인 의원 등 250여명의 인사들 앞에서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1>을 읽었다. <산문시1>을 축약해 349자에 담았다. 대통령 연설에서 시가 이렇게 길게 인용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스웨덴은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이상적인 나라였다”며 “1968년 한국이 전쟁의 상처 속에서 민주주의를 꿈꾸던 시절 한국의 시인 신동엽은 스웨덴을 묘사한 시를 썼다”며 시를 소개했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총리는 기차역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있을 때, 그걸 본 역장은 기쁘겠소라는 인사 한마디만을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새이름과 꽃이름, 지휘자 이름과 극작가 이름을 아는 나라. 노동자들의 바지 뒷주머니에 사유가 있는 나라. 문 대통령이 스웨덴 사람들에게 낯선 시인의 시를 소개한 것은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이상적인 나라’였다고 스웨덴을 추켜세우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신동엽 시인은 지난 1969년 간암으로 숨졌다.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요절할 때까지 총칼이 맞서는 한반도를 평화공동체로 바꾸는 꿈을 시로 그렸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그의 50주기를 맞아 한반도 분단상황의 변화와 함께 그의 대표시 <껍데기는 가라>에 담긴 ‘중립의 초례청’이라는 구절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었다. “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서서/부끄럽 빛내며/맞절할지니.”

남과 북이 만나는 중립의 장소 초례청. 분단 문제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던 시인에게 중립국 ‘스칸디나비아’는 눈에 띄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립지대’와 ‘평화지대’라는 말을 시에 많이 썼는데, 문 대통령은 51년 뒤 이를 스웨덴 의회에서 되살려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가 있는 곳은 시에 담긴 것처럼, 시민들이 새이름과 꽃이름과 극작가 이름을 알고, 바지 뒷주머니에 헤밍웨이와 장자의 책을 넣어놓고 다니는 곳으로 표상된다. 연설에선 축약되었지만 원문을 보면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하지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라며 평화와 풍요는 함께 가는 것으로 묘사됐다. 문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이 시를 읽으며 수준높은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를 상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스웨덴 국민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보이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도 한반도 평화공동체에 대한 시인의 꿈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 막바지에는 스웨덴의 국민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도 인용했다. “겨울은 힘들었지만 이제 여름이 오고, 땅은 우리가 똑바로 걷기를 원한다.” 문 대통령은 “트란스트뢰메르가 노래한 것처럼 한반도에 따뜻한 계절이 오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똑바로 한반도 평화를 향해 걸어갈 것”이라며 스웨덴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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