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3 15:58
수정 : 2018.02.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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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전달받은 평창겨울올림픽 초청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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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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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전달받은 평창겨울올림픽 초청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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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사에 다들 한번씩 갔다 왔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 다 죽어나고 있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요즘 이런 ‘소리 없는 분통’을 터뜨린다.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유용 의혹, 다스·비비케이(BBK) 실소유주 논란, 민간인 사찰·무마 의혹까지, 펼쳐진 사안이 다양하고 수사팀도 많다 보니 조사받고 나온 이들의 반응도 조금씩 다르다. 누구는 “검사가 너무 고압적이라 말싸움이 나서 수사관이 뜯어말렸다”고 하고, 누구는 “강압적이진 않지만 검찰이 상당히 철저하게 준비해놓고 집요하게 파고들더라”고 전한다. 이들은 모두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정치보복’이라고 여기는 터라 마음속 분노는 문재인 정권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 한 방향만은 아니다. “믿고 일한 사람들, 주변 사람들 다 나가떨어지고 있는데 주군이라는 사람은 지금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는 원망을 함께 내뱉는다. “일하다 보면 그릇도 깨고 손도 벤다고 말한 게 누군가. 그 말 믿고 일했는데….” 청와대를 째려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입도 흘겨보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에서 “더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으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고 했지만, 평창겨울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레 검찰은 그에게 ‘묻기’를 미뤘고, 이 전 대통령 또한 내부적으로 법률 조언을 받으며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다”(이 전 대통령),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며 격하게 치고받은 뒤 암묵적으로 ‘평창 휴전’에 들어간 것이다. 두 사람이 오는 9일 평창겨울올림픽 리셉션과 개막식에서 만나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7월 평창 올림픽을 유치한 주역들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에, 지금쯤 언론의 마이크 앞에서 유치 당시를 회고하면서 성공을 기원하는 덕담을 풀어내며 조명받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가 유치 전 당시 외신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던 장면도 환기됐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기자들은 그에게 “특활비 유용을 몰랐습니까”,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묻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은 “날씨가 춥다”, “나한테 물을 일은 아니잖으냐”고 대답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최측근 중에서도 ‘분신’이라는 김희중 전 제1부속실장과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입이 열리고 있어, 이달 말 평창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그가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하는 쪽에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지만,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4.2%(<내일신문>-디오피니언 1월30~31일 전국 1002명 대상 조사)에 이른다.
평창 이후 당장엔 검찰의 선택에 눈길이 쏠릴 것이다. 청와대야 정무적 고민은 하겠지만 문 대통령이 검찰에 ‘구속수사 하라’ ‘불구속수사 하라’ 직접 주문할 가능성은 낮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 볼 것 없이 능력껏 수사해서 법에 맞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다운 처신을 보여줄 것이냐다. 김희중 전 실장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분은 이 전 대통령 한분밖에 없다. 사실관계를 모르는 참모 20명, 30명 모아놓고 이야기해봤자 무슨 답이 나오겠는가.” 그와 일했던 이들이 “검찰 수사를 멈출 사람은 이 전 대통령 본인”이라고 말한다. 검찰보다 먼저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게 그가 말하는 “화합”과 “국격”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말에 진심이 담긴 것이라면 말이다.
황준범 정치에디터석 데스크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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