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23 14:17
수정 : 2017.12.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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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민간 사다리차가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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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스카이장비 업체 운영하는 이양섭씨
“우리 장비로 구할 수 있겠다 판단
아들에게 연락해 장비 가지고 온 것
고가 장비지만 비용은 상관없었다”
구조된 한을환씨에 “치료 잘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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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민간 사다리차가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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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4시께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한을환(52)씨는 운동을 마치고 3층 남성 사우나로 향했다. 창밖으로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래층에서 플라스틱을 태우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본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한씨도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나가기에 나도 따라서 나갔죠. 느긋하게 나갔더니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 나갔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주출입구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한씨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이미 아래층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계단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씨는 8층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 곧이어 다른 두 명이 합류했다. 8층에서 세 명이 함께 기다렸다. 소방서에 전화해 현재 상황을 알리고, 가족과 지인에게도 전화를 했다.
곧이어 소방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다리차가 도착해 사다리를 올리려고 했지만, 몇 번 올라오려다가 다시 내려가길 반복했다고 했다. 그렇게 40분쯤 지났을까. 민간업체의 사다리차가 현장에 도착해 사다리를 올렸다. 한씨를 포함한 세 명이 그 차를 타고 무사히 내려왔다. 한씨는 “지상에 내려오고나서야 건물이 불바다가 됐다는 걸 알았다”며 “지인들이 ‘10분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다’고 했는데, 가슴이 철렁해 그날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씨를 구한 건 제천에서 사다리차 등 스카이장비 대여업체를 운영하는 이양섭(54)씨였다. 이씨는 23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하소동에 사는 친구가 ‘불이 난 것 같다, 8층에 사람이 있는데 불길이 올라오고 있다’고 해서 현장에 가봤더니 우리 장비로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같이 업체를 운영하는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마침 일이 끝나고 근처로 오고 있다고 해서 아들이 장비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들 이기현(29)씨가 현장에 도착하자 15년 경력의 아버지 이씨가 조종대를 잡고 사다리를 위로 올렸다. 쉽지는 않았다. 연기가 거세지면서 위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비를 펼치기 전에는 잘 보였는데, 불이 커지면서 연기가 많아지니까 위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직감적으로 ‘저 정도 높이면 봉 길이를 이만큼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만큼 빼보니 장비가 벽에 닿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세 분이 타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한씨는 22일 생명의 은인인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이씨는 한씨에게 ‘치료를 잘 받고 쾌유하시라’고 화답했다고 했다. 자칫 3년 전에 1억 5천여만원을 주고 산 장비가 불에 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비용은 상관이 없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뭐가 중요하겠냐”며 “모든 상황이 잘 맞았던 것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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