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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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부가 지워버린 남북 해빙기 명장면 5
‘평창 올림픽’ 계기 남북관계 복원 기대감 커져
금강산·개성 관광, 문화·스포츠 민간 교류
이명박근혜 정부 9년간 완전히 끊겨…복원 시급
2005년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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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북쪽 금강산 관광길에 나선 관광객들이 2008년 3월17일 오후 금강산 외금강호텔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부터 시작한 승용차 이용 금강산 관광에는 승용차 17대에 45명의 관광객이 신청했다. 금강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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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에 나선 관광객들이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북한 관광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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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속에서 취소율이 컸던 금강산 관광은 2006년 10월15일 현재 취소율이 18%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2016년 10월15일 낮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단풍이 한창인 만물상 천선대에 오르기 위해 등산로 철게단을 줄지어 오르고 있다. 금강산/강재훈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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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26일 여름방학을 맞아 경기 안산시 송호초등학교 학생들이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전의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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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땐 개성에서 선죽교를 직접 봤다
개성 관광 개시 첫 날인 2007년 12월5일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되었던 선죽교를 관광객들이 해설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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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관광 첫날인 2007년 12월5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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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이 2008년 7월25일 개성의 명승지 선죽교에서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개성/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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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땐 젝스키스·핑클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1999년 12월5일 평양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 출연한 그룹 젝스키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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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5일 평양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 출연한 그룹 핑클의 이효리.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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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뜻 깊은 공연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우리 음악이 조금 듣기 생소하고 다소 시끄럽게 들릴 수 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아 달라. 우린 같은 한민족이고… (객석 웃음·박수) 이곳 말로 ‘놀새떼’(남한의 오렌지족과 비슷한 뜻을 가진 북한말)라고 생각하시고… (객석 웃음)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박수, 호응 많이 해주시면 더욱더 열심히 공연하겠다.”
4. 그땐 북한 응원단원이 이효리와 광고를 찍었다
[%%IMAGE13%%] “명애씨는 너무 고와요”, “효리 동무도 고왔는데, 머리도 물감 들이고(염색하고)….”
2005년 9월12~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 ‘하나의 울림’편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광고의 주인공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 이효리씨와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씨. 조씨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쪽 응원단으로 와 큰 관심을 받은 인물로, 이른바 ‘북한 미녀 응원단’을 대표하는 얼굴이었습니다.
[%%IMAGE14%%] 광고는 두 사람의 어색한 첫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냐”는 이효리의 질문에 조씨가 “81년생”이라고 답하자 이씨는 “나는 79년생, 내가 언니네”라며 반색합니다. 광고의 백미는 두 사람이 함께 오른 콘서트 무대. 손을 맞잡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고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 뒤로 대형 한반도기가 펼쳐지는데요. 분단 체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재회하기 쉽지 않은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최근 이 광고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 파견이 가시화되면서 북한 응원단 방문 여부도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300명 규모의 응원단을 보냈고,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응원단을 보냈습니다.
[%%IMAGE15%%] [%%IMAGE16%%] 조명애씨 외에 북한 응원단으로 유명세를 치른 사람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씨입니다. 1989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청년학생협력단으로 참가해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세 차례 공연을 한 바 있습니다.
5. 그땐 평양에서 뉴스를 생중계했다
[%%IMAGE17%%]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8분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손을 붙잡았습니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이 순간을 남쪽에서도 1초의 지체 없이 티브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 평양 착륙 15분 전에 미리 도착한 합동방송단이 오전 10시 25분부터 곧바로 생중계에 들어간 덕분입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국내 방송사가 평양에서 생중계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남쪽에서 들고 간 이동용 위성지구국 장비인 SNG(satellite news gathering)와 무궁화위성 3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남쪽 카메라 기자가 북쪽 중계차를 이용해 촬영한 화면을 일단 북쪽 전송방식에서 우리 쪽 방식으로 변환된 뒤 SNG를 통해 무궁화 위성으로 보냈습니다. 위성은 이를 서울 광장동 위성지구국으로 보냈고, 이어서 한국통신 국제티브이센터(ITC)에 도착한 화면은 국내 방송사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로 중계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습니다.
[%%IMAGE18%%] 2007년 10월2일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과정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중계됐습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이동했기 때문에 동선을 따라가는 촬영이 많았습니다. 국내 방송사들은 합동 중계차 15대와 헬기 2개를 동원해 청와대, 광화문, 강변북로, 자유로, 통일대교, 도라산, 통문 등 방북단이 지나가는 순간을 생중계했습니다. 오전 9시5분 노 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뒤 잠시 끊어졌던 생중계는 12시께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순간 재개됐습니다.
[%%IMAGE19%%] 7년 사이 달라진 점도 있었습니다. 일단 카메라가 아날로그였던 2000년과 달리 2007년에는 처음으로 에이치디(HD)가 동원됐습니다. 보다 선명한 화질로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2000년에는 북쪽에서 국내 방송사의 직접적인 송출을 막았지만 2007년에는 남쪽 중계차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
‘남북관계 개선 방안”(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 제306호),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금강산 관광 16주년의 의미와 과제’, 현대경제연구원
‘금강산 관광 16주년의 의미와 과제’,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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