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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09 17:14 수정 : 2018.01.09 18:40

1991년 탁구·축구대회 때
첫 단일팀·한반도기·아리랑 등장

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쪽 대표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등을 대거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남북 공동입장·응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회담본부 자료를 보면, 체육행사와 관련해 남북한 사이에 이뤄진 ‘가장 최근’의 합의는 지난 2008년 2월4일 베이징올림픽 남북응원단 참가를 위한 합의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관련 협의가 전혀 없었다.

참여정부가 끝나기 21일 전에 개성에서 이뤄진 이 합의는 △남과 북의 응원단 규모는 각각 150명씩 300명으로 하며 △개막식과 폐막식 참가 △응원 경기종목은 남북 참가 종목 확정 뒤 선정 △응원곡·응원복장·응원도구·응원형식 등은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코리아응원단이 중국 톈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독일의 여자축구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쪽 응원단 사이를 지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제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합의는 노태우 정부 때 이뤄졌다. 이 때 ‘KOREA’라는 단일팀 명칭과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은 ‘한반도기’, 아리랑(선수단 단가)이 처음 쓰였다. 1991년 2월12일 남북 양쪽 올림픽위원회 사이에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포루투갈) 남북단일팀 구성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 남북은 축구대표 단일팀 구성을 위해 평가전을 통한 선수선발, 서울과 평양 등에서 강화훈련 등을 합의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한 북한의 리분희(왼쪽 두번째)와 현정화(가운데)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남북 체육 교류는 활발히 이뤄졌다. 2002년 8월28일 금강산에서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북한 참가 합의가 이뤄졌다. △선수단 305명, 응원단 355명 파견 △선수단은 북쪽 항공기를 이용한 직항노선 남북 왕복, 응원단은 만경봉92호 이용 부산항 입항(만경봉호에서 숙식) △개·폐회식에 한반도기 앞세우고 공동입장 △선수단 표지판(코리아, KOREA) △백두산에서 성화 채화 △북쪽 선수단에 국제전화 2회선, 남북직통전화 10회선 보장 등이 합의서에 담겼다.

참여정부로 접어든 2003년 7월6일, 금강산에서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북한 참가 관련 합의서가 나왔다. △북쪽 선수단 200여명, 응원단 310여명, 기자단 19명 파견 △북쪽 항공기를 이용해 직항 노선으로 남북 왕복 △개·폐회식에 한반도기 앞세우고 공동입장 △신변안전 보장 등의 합의가 이뤄졌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자 북쪽 응원단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듬해 2004년 6월24일에는 아테네올림픽 개·폐회식 남북공동입장 합의서가 나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 올림픽위원회 사이에 이뤄진 합의는 △선수단 호칭(코리아, KOREA) △선수단 깃발(‘한반도기’) △선수단 공동입장 음악(시드니올림픽 때 사용한 ‘아리랑’) △공동입장 순서(공동기수 남쪽 여자, 북쪽 남자) △선수단 복장(남자 상의 청색·하의 베이지색, 여자 상의 적색·하의 베이지색) 등이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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