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2.17 10:09 수정 : 2018.02.19 17:17

문 대통령 취임부터 방북 초청, 그리고 촛불

자연의 봄은 때가 되면 오지만 사람의 일은 다르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거듭될수록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코피 전략’이라는,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북한 정밀 폭격 시나리오까지 공공연하게 나왔다. 채 50일도 지나지 않은 2017년 상황이다. 북쪽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방남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인 김여정 특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여건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폭탄을 주고 받다 우발적인 악재들이 더해져 최악의 순간을 맞는 것보다는…. 평화 정착의 여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험난하다 해도 전쟁을 걱정하는 상황보다는 낫다. 긴장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 기운이 스미기 시작한 그동안의 시간을 결정적인 장면 몇 가지로 정리했다.

1. 문재인 대통령 취임 연설 “안보위기 서둘러 해결하겠다” _ 2017. 5.10.

문재인 대통령이 5월10일 오전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6년 겨울을 달궜던 촛불혁명으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한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안보위기를 서둘러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2. 한-미 정상 “단계적·포괄적 접근으로 북핵 해결” _ 2017. 6.30.

미국을 공식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월30일 오전(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로즈가든에서 한-미 공동 언론발표를 하며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 대통령은 한-미 공조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가 누구인지도. 취임 직후 한-미정상회담 성사에 공을 들였고 6월말 미국 워싱턴으로 향했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평화적 방식으로 달성하기 위해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무력이 아닌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데에 합의했다.

3. 문 대통령 독일에서 ‘베를린 구상’ 발표 _ 2017. 7.6.

문재인 대통령이 7월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 방문 중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을 하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밝혔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베를린 평화구상’ 혹은 ‘베를린 구상’으로 불렸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비핵화 추구 △남북간 합의들의 법제화 △한반도 ‘신경제지도’ 본격화 △비정치적 분야 교류협력 확대 등 5대 정책방향과 이를 위한 남북대화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4대 실천 과제를 북한에 제안했다.

4. 문 대통령 “모든 것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 _ 2017. 8.15.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인 15일 오전 광복절 기념식 참석에 앞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광복절에 백범 묘역을 찾은 현직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며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거듭되고 미국 강경파를 중심으로 ‘군사적 해법’ 얘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나올 때였다.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노력을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전쟁 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 달래기 차원이었다.

5. 문 대통령 “평창을 평화의 빛 밝히는 촛불로” 유엔서 호소 _ 2017. 9.21.

문재인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뉴욕/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층 악화된 한반도 정세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뽑아든 카드는 ‘평화’였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로운 수단으로 국민주권을 증명한 ‘촛불혁명’의 정신을 강조하며 내년에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전세계 평화를 밝히는 촛불’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전적인 메시지와 달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엔 무대에 선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처럼 평화의 위기 앞에서 평창이 평화의 빛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며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평창으로 초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창(2018년), 일본 도쿄(2020년), 중국 베이징(2022년) 등에서 ‘릴레이 올림픽’이 열리는 점을 언급하며 “냉전과 미래, 대립과 협력이 공존하고 있는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증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6. 한-중 정상 “전쟁 절대 용납못해” 한반도 평화 4원칙 합의 _ 2017. 12.14.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2018년 평창과 2022년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을 위한 상호교류 및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국민 몰래 들여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제로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양국 관계를 복원해야 했다.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던 한-중 정상회담이 연말에야 성사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면서 △남북한 간 관계 개선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

7. 김정은 “평창 대표단 파견 용의…남북 시급히 만날 수도” _ 2018. 1.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월1일 오전 평양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새해가 되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이 응답을 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정세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대화 메시지를 던져온 덕분일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제재와 압박에 북한이 전략을 바꾸었을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겨울올림픽(2월9~25일)에 대해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한 육성 신년사에서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도 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풀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탄력받기 시작했다.

8. 북, ‘평창’ 파격 제안으로 시작…군사회담까지 통 큰 합의 _ 2018. 1.9.

우리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월9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또 틀어지는 것 아닐까 불안감이 없진 않았다. 2년1개월여 만에 마주 앉은 남과 북은 회담 개시 불과 10시간 만에 3개항의 공동보도문 문안에 합의하고, 체육회담·군사당국회담 등 후속 회담도 열기로 했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간접대화’ 하는 방식으로 회담을 성사시킨 것이 이견이 있더라도 좁힐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남쪽이 △평창올림픽 북쪽 대표단 파견 △개·폐막식 남북 공동입장 △공동응원을 위한 응원단 파견을 제의하자, 북쪽은 △고위급 대표단, 민족올림픽위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예술단·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까지 파견하겠다는 ‘파격’으로 맞받아 공동보도문에 담았다. 남북은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대표단이 방남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한 후속 회담 일정 등은 향후 문서로 협의하기로 했다.

9. 한반도기 휘날리며 함께 입장한 순간…모두가 기립·환호 _ 2018. 2.9.

2월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 공동기수인 남측 원윤종, 북측 황충금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총회에서 평화의 평창올림픽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고작 100Km를 달리면 한반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휴전선과 만나는 도시 평창에 평화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모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우의와 화합의 인사를 나눌 것입니다. 그 속에서 개회식장에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 뜨겁게 환영하는 남북 공동응원단, 세계인들의 환한 얼굴들을 상상하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닙니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적극 환영하며, IOC와 함께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문 대통령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2월9일 평창겨울개막식. 남북 올림픽 선수단 180여명이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 마지막으로 들어오자 3만5천개의 좌석을 꽉 채운 관중은 모두 일어나 박수와 환호로 맞이했다. 남한의 원윤종과 북한의 황충금이 맞든 한반도기 뒤의 남북 공동입장 선수들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표정은 밝았고, 열기는 고조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밝게 웃으며 다시 한번 악수를 건넸다. 김 상임위원장과 김 부부장도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10. 문 대통령, 김정은 ‘방북’ 초청에 “여건 만들자” _ 2018. 2.10.

문재인 대통령이 2월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파격의 연속이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달라고 공식 초청했다. 사실상 제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월10일 오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쪽 고위급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 대표단원의 일원으로 참석한 김여정 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앞서…

2016년 겨울, 광장을 달군 촛불이 있었다.

[%%IMAGE11%%]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