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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8 18:45 수정 : 2018.02.18 19:06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지난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깜짝’ 방남은 놀라운 일이었다. 지난해 내내 남북이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을 겪었다는 사실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비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용의’를 밝힌 것만으로도 북한의 전격적인 변화는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여동생을 사절로 보내다니!

이런 전격성이 북한의 관행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과거 북한은 예상치 못한 극적인 국면전환을 하곤 했다. 1993년 3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맞서며 불거진 1차 북핵위기는 한반도 전쟁 위기로 비화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김일성 주석은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전격 회동해 ‘제네바 합의’로 이어지는 대화국면을 열었다. 가깝게는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북한은 남한이 보복 조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남북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가, 돌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을 제안하며 분위기를 180도 바꿨다.

그럼에도 ‘깜짝’, ‘전격’, ‘급변’ 등으로 묘사되는 행동양식에 여전히 우리 사회가 놀라움을 나타내는 것은 남북 사이에 서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 작동 방식의 차이가 크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남한의 대외정책에서 깜짝, 전격 등은 쉽지 않다. 급변이나 불가측성은 내부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발붙이기 어렵고, 도전받지 않는 일인독재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경위야 어떻든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파견이 당장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높인 건 사실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내내 밝고 환하게 웃는 표정과 수수한 차림새로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12~13일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만남이 ‘남북대화와 긴장완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55.3%로, ‘형식적인 만남에 불과했다’(38.6%)를 크게 앞섰다.

실제 돌아가는 분위기도 평창올림픽이 기회의 창을 열어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북 압박에 집중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도 최근 ‘조건 없는 탐색적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 대표단을 외면했던 강경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귀국길 언론 인터뷰에서 “최고의 대북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우리도 대화할 것”이라고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17일 “북한이 대화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길 귀기울이고 있다”고 거들었다. 남북관계의 복원과 함께 북-미 대화도 열릴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급한 불을 껐던 북핵위기는 끝내 해결되지 않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15년 8월 ‘준전시 상태’에서 돌연 마련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도 남북 차관급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차례씩 하고 그만이었다. 국면전환이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에 그친 꼴이 됐다. 실제 대화국면을 열려면 그에 걸맞은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조금씩 양보할 진정성이 없다면 대화국면은 얼마 못 가 꺾일 수밖에 없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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