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92
평창겨울올림픽 색깔론 공세 실패…6·13 지방선거 위기감
북한에 대한 비판보다 문재인 정부 겨냥한 정치공세 몰두
리더십 위기 홍준표 대표는 당내갈등 해소 기회로도 활용
‘태극기 부대’ 따라하기…‘2017대선’처럼 의도적 극우 선회
저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1주일 전인 2월20일치에 ‘태극기 부대 닮아가면 안 된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자유한국당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등 갈수록 ‘태극기 부대’의 주장을 닮아가는 현상을 지적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태극기 부대 닮아가는 자유한국당’은 ‘현상’을 강조하는 제목이었습니다. ‘태극기 부대 닮아가면 안 된다’는 ‘당위’를 강조하는 제목이었습니다. 당위를 선택했습니다. 자유한국당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접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야당으로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반론입니다. 야당이 집권세력을 정확히 비판하고 견제해야 집권세력이 오만해지지 않고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선거로 번갈아 집권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입니다.
둘째, 자유한국당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촛불 정신을 받들었던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60여명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바른정당을 창당했지만 2017년 대선 전후로 상당수가 자유한국당에 복당했습니다.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외침에 응답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협조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들을 새로운 대한민국 재건의 대열에 합류시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당 지도부의 정치적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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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일행이 경기 파주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한 25일 오전 소속 의원, 당직자들과 함께 통일대교 남쪽 도로를 점거한 채 "문재인 정부는 개헌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려 하며, 종국적인 목적은 남북 연방제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4일 저녁 7시부터 북쪽 고위급 대표단의 통행을 막으려고 차량을 동원해 이곳을 점거한 채 밤샘농성을 벌였다. 파주/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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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내보내고 이틀 뒤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김정은 정권의 핵심이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의 책임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꽤 시끄러워질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에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보수를 자처하는 야당이 김영철 부위원장 반대 목소리를 내면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상대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펄펄 뛰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 수십명이 23일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당내 중진 김무성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뭔지 핵심을 간추려보았습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23일 이런 논평을 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폭침과 포격과 지뢰로 국민들을 집단 살인한 김영철을 환영하고 청와대까지 들이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임을 포기하는 반역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영철의 한국 방문을 허가하는 것은 천안함 폭침, 목함지뢰 도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동조하는, 대한민국을 배신한 이적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을 반역행위자, 이적행위자로 몰고 있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정권이 명실상부한 친북 주사파 정권이 아니고서야 대통령이 김영철을 얼싸안고 맞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5천만 우리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시길 바란다. 제아무리 주사파가 득세한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이 나라는 주사파의 나라가 아니라 언제나 자유대한민국 국민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권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김정은의 남남갈등, 한미 간 책동에 부화뇌동하는 친북 주사파 정권의 최종목표는 결국은 연방제 통일인가요?”
“반미 자주를 외칠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고 경제적인 압박에도 벗어나야 할 때인데 주사파들의 철 지난 친북정책으로 나라가 혼돈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일관되게 한 말이 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킵시다! 정권의 본질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북핵 사태로 인한 안보위기는 DJ·노무현의 잘못된 대북정책에서 비롯됩니다. 아사지경에 이르렀던 북이 막대한 핵 개발자금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DJ·노무현의 막대한 대북지원 달러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 정권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대북 대화 구걸 정책은 북핵 위기를 초래한 햇볕정책의 변형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비판은 북한과 김영철 부위원장보다 주로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을 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주사파 정권’이기 때문에 김영철 부위원장을 불러들였다는 정치 공세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주사파 정권인가요?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김정은 위원장이나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대화 및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 국민의 상식이고 문재인 정부도 그런 상식에 기반해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정치 공세는 소리만 클 뿐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약발’이 오래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을 과도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물론 ‘가치 투쟁’의 성격이 있을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대체로 ‘보수’의 가치를 신봉합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역대 대선주자나 당 지도부 중에서 군 생활을 제대로 하거나 도덕성을 갖추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의원이나 당원 중에는 ‘보수’나 ‘애국’을 가치관으로 가진 사람은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2당으로 추락했고, 2017년 5월 대선에서 정권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6·13 지방선거에서 자칫하면 ‘티케이 자민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절박한 것입니다.
23일 발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정당 지지도는 11%였습니다.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1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자릿수 후반대와 두 자릿수 초반대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으로서 보다 심각한 현상은 다른 정당의 지지도입니다. 최근 등장한 30석 의석의 바른미래당의 지지도는 8%였습니다. 오차범위를 따지면 자유한국당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48%를 기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0% 후반대로 안정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높기 때문에 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설 연휴 전 63%에서 68%로 5%포인트나 올랐습니다. 부정적인 여론은 28%에서 22%로 떨어졌습니다.
자유한국당이 가상화폐와 최저임금제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평창동계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폈는데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전혀 끌어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어떻게든지 판을 흔들어 양강구도를 만들지 못하면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제1야당이라는 정치적 지위마저 잃게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감은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의원 대부분이 공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23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청와대 앞 시위에는 평소 홍준표 의원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나경원 의원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홍준표 대표와 여러 차례 충돌했던 김태흠 최고위원은 24일 “문재인 정부가 ‘뼛속까지 친북’, ‘묻지 마 북한 패스’ 정권이지만 천안함 폭침 등 대남도발의 주범 김영철만큼은 우리 땅을 한발도 밟게 할 수 없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취약한 리더십으로 고생하던 홍준표 대표에게 ‘김영철 방남’ 국면은 당내 갈등 요인을 일시적으로라도 잠재울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선 보다 전향적인 입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북핵과 체제 보장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나는 본다. 북한이 북미 대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 보장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는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는 북한의 체제 보장이 선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협력하여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국제적 보장을 해 주고 북핵 폐기를 유도하는 방안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의 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글은 홍준표 대표가 2009년 자서전 <변방>에 쓴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가치를 위해 이익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대중은 자유한국당을 약자가 아니라 ‘노답꼴통’으로 볼 것이다. 대중은 약자는 응원하지만 노답꼴통은 경멸한다. 자유한국당의 5대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수구, 기득권, 반북, 평화, 호남)”
누구의 주장인 것 같습니까?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해 7월 ‘자유한국당과 보수 재건을 위한 제언-이제는 야당이어야 한다!’라는 책자에 쓴 글입니다.
홍준표 대표나 김성태 원내대표가 본래부터 ‘맹목적인 반북’이나 ‘수구 꼴통’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평창올림픽을 성공시키고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북미대화의 돌파구를 여는 일은 당연히 자유한국당 몫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는 세계인의 축제요, 온 국민의 감동이었던 평창동계올림픽에 끊임없이 ‘평양올림픽’이라는 붉은 색칠을 했습니다. 북핵 해결을 위해 어떻게든 북미대화의 실마리를 마련하려 애쓰는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부’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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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일행이 경기 파주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한 25일 오전 소속 의원, 당직자들과 함께 통일대교 남쪽 도로를 점거한 채 "문재인 정부는 개헌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려 하며, 종국적인 목적은 남북 연방제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4일 저녁 7시부터 이곳을 점거한 채 밤샘농성을 벌였다. 파주/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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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선거 때문입니다. 6·13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보다 자유한국당을 보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숨을 연장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6·13 선거에서 참패하고 당 지도부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선거를 앞둔 자유한국당의 전술적 극우 선회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홍준표 대표는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물론이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도 지지도가 밀리자 선거 막판에 ‘박근혜 마케팅’을 들고 나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유권자들을 흡수해야 최소한 2등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조원진 후보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대거 찍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대선에서 2등을 차지했고 그 성적표 덕분에 대선 이후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조원진 의원이 이끄는 대한애국당은 주말인 24일 오후 서울역 광장 태극기 집회에서 ‘김정은·김영철·인공기 화형식’을 했습니다. “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 “평양올림픽 반대”, “김영철 방한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종로 5가까지 행진했습니다.
자유한국당도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현장 의원총회를 열었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 장제원 수석대변인, 김무성 위원장 등은 24일 통일대교 입구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철회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주저앉아 농성을 벌였습니다. 25일에는 홍준표 대표까지 통일대교 남단 ‘저지 투쟁’에 가세했습니다. 26일 오후 3시에는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자유한국당의 거리투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대한애국당과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행동이 거의 비슷해져 가고 모양새입니다.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와 닮아가면 안 된다는 저의 바람은 아무래도 허망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보수 성향 유권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맹목적인 반북 캠페인으로 6·13 선거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보수 정당 재건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국민은 자유한국당이 벌이는 ‘극우 선회 쇼’의 배경과 진짜 이유를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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