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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4 18:20 수정 : 2018.03.05 10:56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시계를 반년 정도만 돌려봐도 평창 겨울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느냐를 걱정하는 상황이었다는 걸 다들 기억할 거다. 하지만 웬걸, 올림픽이 끝난 지금 인기 드라마가 종방한 것처럼 허전하다. 인면조와 ‘모루겟소요’,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 등 즐거움과 감동을 준 이들이 많았지만, 최고는 컬링! 4명의 자매·친구들이 경북 의성이라는 변방에서 고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이라는 비인기 종목을 시작해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써냈다. 강렬한 눈빛의 유행어 제조기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도 멋있었지만, 난 정확하고 파워풀한 테이크아웃에 우렁찬 목소리로 ‘허어어어얼'(헐은 ‘빠르게 닦아라’는 뜻)을 외치는 김경애 선수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문득 우리 사회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만들 때 선수 개인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관계의 오류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괄호 쳐 둔다면, 더는 ‘국가나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한 목소리 자체는 옳았다. 미투 운동에 나선 용기 있는 여성들의 요구도 같은 논리에 기반을 두지 않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연이어 불거지는 논란도 역으로 우리가 성장한 모습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노선영 선수와 따로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사람들은 코치진과 두 선수가 빙상연맹 눈 밖에 난 노 선수를 왕따시킨 것 아니냐고 물었다. 고교생 정재원 선수가 선배 이승훈 선수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 정당한가를 두고도 논쟁이 일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수십만명에 이른 것은 정도를 넘어선 감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데는 이런 마음이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더는 결과로 과정을 덮지 말자.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희생양 삼는 방식으로 이룬 성과는 달갑지 않다.

지금 한국 스포츠 체계는 이처럼 성장한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 ‘연금과 병역특례를 내걸고 소수의 선수를 모아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메달을 따고 종합순위를 올려서 국위를 선양한다.’ 이런 지난 88올림픽의 틀에 맞춰진 엘리트 체육 안에서 올림픽은 돈과 생존의 문제, 연줄과 학연이 작용하는 암투, 누군가를 쓰고 버리는 비정한 기계가 된 건 아닐까. 지금 방식대로라면 앞으로 있을 올림픽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한 언론사 기자의 칼럼을 보니, 이번에 종합 1위를 한 노르웨이의 체육 시스템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 전국에 1만1천여개 스포츠클럽이 있고, 93%의 어린이가 가입해 운동한다. 생계와 훈련자금을 모두 선수가 부담해야 해서 선수들은 배관공이나 교사 등 본업이 있다. 메달을 따도 특별한 상금이 없다.

올림픽 헌장은 그 첫 줄에 “올림픽 정신은 신체와 의지, 정신이 균형 잡힌 완전체가 되도록 고양하고 결합하는 삶의 철학”이라고 정의한다. 이 고전적 이념을 완전히 되살리긴 어렵겠다만, 본래 올림픽은 몸과 마음, 정신을 고루 발달시킨 사람을 인류의 전범으로 내세우는 교육의 장이었다. 이젠 몸도 쓰고 머리도 쓰는, 자신의 직업이 있으면서도 아마추어 운동선수이기도 한 일상의 영웅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부든 기업이든 컬링장을 여기저기 좀 더 지어줬으면 좋겠다. 덧붙여 운동 좀 할 수 있게 #노동시간 단축 #워라밸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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