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3 20:46
수정 : 2018.12.25 16:30
뜨거웠던 이슈, 방치하는 국회
① 미투 관련법
안희정 무죄 뒤 여성의원들 나서
‘비동의 간음죄’ 발의했지만 관심 밖
‘2차 가해 즉시 관련자 징계’ 담은
피해자 보호법 소위 문턱 못 넘어
데이트폭력 피해 초기 구제법도
미성년 성폭행 시효 배제도 외면
미투 59개 법안 중 51개 계류 중
국민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터지면, 국회는 경쟁적으로 법안을 쏟아낸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미투’(#Me Too)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을 때도 그랬다. 관련 법안은 당시에 ‘반짝 관심’을 받았을 뿐 그 뒤로는 국회의 무관심에 기약 없이 방치되고 있다. <한겨레>는 미투 관련 법안을 시작으로, 한때 국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들의 행방을 점검한다.
미투 관련 대표적인 법안은 ‘비동의 간음죄’ 처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형법 일부 개정안이다. 지난 8월14일 서울서부지법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하자, 같은 달 27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협박 또는 폭행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행위를 처벌’(비동의 간음죄)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규정돼 있어 법원은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일 때로 한정해 유죄 판단을 해왔다.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부 역시 수행비서인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의 요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해 여론의 비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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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회원 등이 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위 력에 의한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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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의 없는 성관계 처벌’을 담은 형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에 계류돼 있다. 1소위원장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성요건이 신설되는 부분을 따져보고,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죄와 양형문제를 비교해보기 위해 형사정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결과가 오면 다시 이 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여야 여성 의원이 공동 발의한 형법 개정안 역시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법사위 관계자는 “법안을 순차적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내년 1~2월 국회가 열리면 상정될 거 같다”고 밝혔다.
국회에 잠들어 있는 ‘미투’ 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23일 <한겨레>가 전혜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파악한 ‘12월 기준 미투 법안 추진 현황’을 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8건에 그친다. 여전히 51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법안도 국회에 묶여 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이런 사례로 꼽힌다. 이 법안은 여성가족부 장관이 국가인권위원회 등으로부터 국가기관 등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2차 가해’가 발생한 사실을 통보받으면 관련자 징계를 요청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가위 법안소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 대책 마련에 고심했던 ‘데이트 폭력’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데이트 폭력 초기부터 피해자 구제를 위한 내용이 촘촘히 담겼지만 이 역시 여가위 법안소위에 여전히 방치돼 있다. 13살 미만 아동·청소년에 대해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도 법사위 전체회의에 계류 중이다.
직장 내 성폭력 방지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성희롱 등 성차별 위반 시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신설)과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성희롱 관련 사항을 노사협의회 협의사항으로 명시) 등 10건의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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