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3 15:04
수정 : 2019.01.1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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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2일 미국 미시간주 샬럿에서 열린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 사건 재판에서 한 피해 선수 아버지(왼쪽)가 분을 참지 못하고 나사르(원)를 향해 돌진하려 하자 관계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나사르는 30년 동안 수백명의 체조 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해 징역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샬럿/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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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자프로농구 감독 성폭행 미수 파문
대한체육회 영구제명, 접촉 가이드라인 등
미국은 관리·감독 부실에도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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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2일 미국 미시간주 샬럿에서 열린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 사건 재판에서 한 피해 선수 아버지(왼쪽)가 분을 참지 못하고 나사르(원)를 향해 돌진하려 하자 관계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나사르는 30년 동안 수백명의 체조 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해 징역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샬럿/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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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성폭력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선 엄벌에 처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4월, 한국 여자프로농구에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여자프로농구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시키며 ‘명장’ 소리를 듣던 우리은행 박아무개 감독이 미국 전지훈련 도중 소속팀 한 선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성폭행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검찰 공소장을 보면, 박 감독은 저항하는 선수를 힘으로 제압한 뒤 성폭행 직전까지 이르렀다. 이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밖에서 문을 두드려 가까스로 성폭행을 모면했다. 피해 선수는 당시 만 19살 미성년자였고, 박 감독 딸과 고교 시절 함께 농구를 한 친구로 밝혀져 더욱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법원은 박 감독이 전과가 없고, 사건 당시 만취 상태였으며, 국가대표 감독 등 10여년간 여자농구에 기여한 점을 참작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 여성계는 크게 반발했지만 국내에서 영구 제명된 박 감독은 이후 중국으로 떠나 남자프로농구 2부리그 팀과 심지어 여자프로농구 1부리그 팀까지 맡아 10년 동안 버젓이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농구인은 “대한농구협회가 추천서를 떼준 덕분에 박 감독의 중국행이 가능했다”고 개탄했다.
북한의 유명 리듬체조 선수 출신으로 탈북한 뒤 한국 국가대표 코치로 일하던 이경희(48)씨는 2011년부터 3년여간 대한체조협회 전무이사였던 김아무개씨한테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대한체육회가 감사에 착수하자 김씨는 체조협회에 슬그머니 사표를 냈다. 이후 김씨가 체조계 복귀를 시도하자 이씨는 2017년 김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이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을 들어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영장을 기각했고, 결국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김씨에겐 ‘면죄부’였던 셈이다. 김씨는 현재 한 지역의 체조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체육계 최초로 ‘미투’에 나서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현실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2016년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과 미시간주립대학교 체조팀에서 주치의를 지낸 래리 나사르가 30년 동안 수백명의 체조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사르는 사실상 종신형과 다름없는 징역 175년 형을 받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미국체조협회와 미시간주립대도 중징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사르를 고용했던 미시간주립대는 피해자들 개인 보상금 등으로 5억달러(약 5580억원)를 지급했고, 체조협회는 1억5천만달러(약 1674억원)의 합의금을 내고 보상금을 감당하지 못한 채 파산신청을 했다. 이 사건으로 루 애나 사이먼 미시간주립대 총장이 사임하고, 스티브 페니 전 미국체조협회장과 체조협회 이사진 전원이 사퇴했다.
앞서 2011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이른바 ‘미국판 도가니’ 사건이 벌어졌다. 이 학교의 제리 샌더스키 풋볼팀 코치가 15년 동안 10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6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이 당시에도 예외 없이 대학과 감독 등은 중징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총장을 비롯해 고위 임원진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6천만달러(약 670억원)의 벌금형이 부과됐다. 당시 풋볼팀을 맡았던 조 퍼터노 감독은 샌더스키의 범행을 침묵한 대가로 해임됐을 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모든 명예를 잃었다. 40시즌 이상 이 대학의 감독을 맡으면서 대학 1부리그 풋볼 최다승 기록 보유자였던 그였지만 대학풋볼협회는 범죄가 벌어진 뒤 퍼터노 감독이 이 팀에서 기록한 14년간의 모든 기록을 삭제했고, 학교 운동장 앞에 세워졌던 퍼터노 감독의 동상도 철거됐다. 퍼터노 감독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풋볼팀을 두차례나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한때 미국대학체육협회에서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퍼터노 감독은 샌더스키의 범행을 대학본부에는 알렸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사건이 드러나면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기부금 등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던 대학의 침묵에 동조하면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처음 폭행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조처가 이뤄졌다면 피해 선수들이 수년 동안 고통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김동훈 이찬영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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