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5 11:59
수정 : 2019.11.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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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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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실업선수 56개 종목 4069명 대상 인권실태 조사
“성인선수 학생선수보다 인권침해에 더 크게 노출”
34% 언어폭력·15% 신체폭력·11% 성폭력 경험
성차별도 심각…“아이 계획하자마자 선발 명단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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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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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로 선수한테 엄청 수치심을 줘요. “야, 너 일로와. 이 새X”, “이X아”, “글러빠진 새X야.” 이런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것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해요.” (20대 중반 선수)
#2.
“이야기를 하다가 물건을 집어 던지는 거예요.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요. 제 평생 받지 못했던 모욕감을 느꼈어요. 쌍욕은 아니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어요.” (20대 후반 선수)
#3.
“(도)시청 분들이 맨날 술자리에 끌고 나가요. 시합이 일주일 남았는데, 감독님하고 친분을 쌓기 위해 술자리를 만들고, 회식 자리에 선수들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요. 7일 중의 7일을 술마신 선수도 있었어요. 술자리가 저녁에 시작되면 다음 날까지 마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강압적으로 여성 선수들한테 감독님 지인분들을 소개해줘요. 계속 연락하라고 하고….” (30대 초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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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실업팀 성인선수 1251명 실태조사 결과’.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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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운동부에 소속된 성인 선수들 10명 가운데 6명이 성폭력 등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학생 선수들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7월22일부터 8월5일까지 15일 동안 직장 운동부를 운영하는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4069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성인 선수들이 학생 선수들보다 인권침해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실업팀 선수는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장 운동부 소속 선수를 일컫는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응답자 1251명 가운데 33.9%는 언어폭력, 15.3%는 신체폭력, 11.4%는 성폭력을 각각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합하면 60%로, 10명 가운데 6명이 언어와 신체폭력, 성폭력 등을 경험한 것이다. 응답자의 56.2%는 (성)폭력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언어폭력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 선수들의 피해가 컸다. 여성선수 가운데 37.3%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욕, 비난 협박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했다. 남성선수는 30.5%로 여성선수보다 낮았다. 언어폭력 발생장소는 훈련장 또는 경기장이 88.7%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숙소(47.6%), 회식 자리(17.2%)가 뒤를 이었다.
또한 성인 선수들도 학생 선수들처럼 자주 신체폭력에 시달렸고, 폭력을 당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신체폭력을 경험한 실업선수들은 주로 ‘머리 박기, 엎드려 뻗치기 등 체벌(8.5%)’, ‘계획에 없는 과도한 훈련(7.1%)’,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5.3%)’ 등을 당했다. 경험 주기별로 ‘일년에 1~2회’는 45.6%, ‘한 달에 1~2회’는 29.1%, ‘일주일에 1~2회’는 17.0%로 집계됐으며, ‘거의 매일’ 신체폭력을 경험한다는 응답도 8.2%에 달했다. 신체폭력 피해 선수 가운데 67.0%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고, 38.5%는 괜찮은 척 웃거나 그냥 넘어갔다고 했으며, 33.0% 역시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등 대다수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싫다고 분명히 말하고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등 적극적 대처는 6.6%에 그쳤다.
아울러 여성선수들은 직장운동부에서 심각한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권위 심층면접 조사 결과, 여성선수들은 생리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남성 지도자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남성 감독이 무서워서 혹은 불이익을 받을까 봐 말을 못 꺼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선수들은 선발명단에서 제외하거나 은퇴를 종용한다는 이유로 팀의 이해 관계에 따라 결혼계획과 임신계획을 세운다고 털어놨다. 30대 초인 한 여성선수는 “제가 아이를 가지려고 준비한다고 했을 때부터 명단에서 제외하려고 했다. 아기 낳고도 나는 자신있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감독이 ‘할 수 있어? 힘들 걸?’ 이런 식으로(했다)”며 “외국 선수들 경우는 40~50대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애 낳고 30대 중·후반이 되면 다들 그만두고 다른 일 하시더라”라고 털어놨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성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가 매우 심각함을 확인했다”며 “특히 여성선수들이 인권침해에 취약한 환경에서 원하지 않는 회식 강요, 직장 성희롱 및 성차별, 결혼이나 임신·출산으로 인한 은퇴 종용 문제를 경험한다. 여성 지도자 임용을 늘려서 스포츠 조직의 성별 위계관계 및 남성중심 문화의 변화를 통한 인권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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