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6 16:33
수정 : 2020.01.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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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넥슨 성우 김자연씨가 에스엔에스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위), 게임 ‘소녀전선’ 케이세븐(K7) 원화(아래 왼쪽)와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의 일러스트(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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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작가 남성혐오 글’ 제보에
게임 ‘명일방주’쪽, 작업물·글 삭제
“협업자 선정 때 사전조사 과정 강화”
남성중심 이용자 요구에 퇴출 반복
여성계 “노동권 탄압말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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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넥슨 성우 김자연씨가 에스엔에스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위), 게임 ‘소녀전선’ 케이세븐(K7) 원화(아래 왼쪽)와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의 일러스트(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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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일러스트 작가의 작업물을 삭제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2016년 넥슨의 게임에 목소리를 입힌 성우 김자연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퇴출당한 이후 거센 사회적 비판이 일었지만, 이런 관행은 잊을만하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1시께 게임사 ‘요스타’(YOSTAR)가 배급하는 게임 ‘명일방주’ 운영팀은 공식 카페에 “사전예약 30만명 돌파 기념 축전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에 관한 제보가 올라왔다. (해당 작가의) 트위터 게시글 중 특정 사상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확인됐다”며 “저희는 정치적·사상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의 자세로 유저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해당 게시글은 전부 내려갔고 재게시 예정은 없다. 향후 협력 인원 선정 시 사전 조사 과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업체가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 일러스트 작가를 퇴출하고, 사전 사상검증까지 하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이 카페에는 “축하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가 과거 트위터에서 남성 혐오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용자들의 항의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이용자들은 이를 두고 “빠른 대처다”, “논란되는 성향은 완전히 배제하라”라며 환영하고 나섰지만, 여성단체 등에서는 거센 비판이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날 “남성 중심적인 게임업계에서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명일방주와 요스타가 진정 사과해야 할 사람은 일부 게임 유저가 아닌 노동권을 침해당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게임업계는 언제까지 구태에 머물 것이냐”라고 밝혔다.
게임업계 사상검증 사건은 2016년 ‘넥슨 사태’ 이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8년 3월21일에는 게임 ‘소녀전선’ 케이세븐(K7) 원화를 그린 일러스트 작가 아르오디(ROD)가 <82년생 김지영> 관련 트위터를 공유했다가 퇴출당했다. 같은해 3월26일에는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에서 외주 일러스트 작가의 페미니즘 에스엔에스와 관련해 “해당 일러스트를 새롭게 제작할 예정”이라며 사실상 퇴출을 알린 일과 아이엠시(IMC) 게임즈에서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원화를 그린 작가가 트위터 내용이 문제가 되자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함께 벌어졌다. 지난해 11월16일에도 게임업체 티키타카스튜디오가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의 외주 일러스트 작가의 과거 김자연씨 지지 발언을 빌미로 이 작가를 퇴출하겠다고 알리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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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명일방주’ 운영팀이 공식 카페에 올린 사과문. 명일방주 공식 카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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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공개되면 이들의 에스앤에스를 뒤져 페미니즘을 옹호하는지 검증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지속하는 이유는 게임업계가 블랙컨슈머의 말에 적극 동조했기 때문”이라며 “명일방주 운영팀이 ‘사전 조사 과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상을 핑계로 여성 노동자를 업계에서 배제하겠다는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김희경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지회장은 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게임업체 쪽에서는 ‘남성 이용자가 많아 그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런 의견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게 문제”라며 “받아들이면 안 될 의견이 수용되다 보니 사상검증의 영역도 사소한 쪽으로 번져간다”고 꼬집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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