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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8 14:55 수정 : 2019.01.24 09:25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밤 11시55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
이르면 22일 영장심사 열릴 듯

박병대 전 대법관 구속영장 재청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밤 11시55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8일 청구됐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재판 개입 및 법관 사찰 등을 한 혐의로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앞서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지난달 7일 기각된 바 있다. 검찰은 이번에 공모 혐의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박 전 대법관에 대해서만 재청구하는 ‘안전한’ 길을 택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과 15일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사건 재판 개입, 특정 성향 판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 등 자신의 혐의들에 대해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두 부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그의 재판 개입 등의 행위로 인해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등 사안이 중대한 점,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막강한 지위로 볼 때 관련자 진술 등 각종 증거가 인멸될 우려가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주말이 끼어있어 이르면 22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심문이 구속영장 청구 사흘 뒤에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평일을 기준으로 23일 심문 일정이 잡힐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검찰 조사 과정에서 42년간 법복을 입고 사법부 수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법률가 양승태’의 조사 태도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지난 11일 검찰 출석에 앞서 대법원 정문에서 ‘담벼락 입장’ 발표를 강행했다. 정작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도 모두 섰던 검찰청 앞 포토라인은 그냥 지나쳤다. 오만한 행태라는 비판이 법원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그는 이날 성명 발표를 통해 도의적 책임을 언급한 것일 뿐 법적 책임에는 철저히 선을 그었다. 그는 입장문에서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이 자기들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그 말을 믿고 있다”면서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재임 시절 사법농단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만약 불법행위가 있었더라도 아래 법관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마라톤 피의자 조서 열람’도 관심을 끌었다. 그는 11~12일, 14~15일, 17일 닷새에 걸쳐 모두 30여시간 동안 자신의 조사를 열람했다. 20여시간에 그친 검찰 조사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다. 2017년 국정농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시간30분 동안 조서를 열람해 화제가 됐는데, 이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을 조서 열람에 할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략적인 답변을 한 탓에 말실수를 꼼꼼하게 확인한 것이다” “검찰이 수집한 증거들을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한 것이다”는 등의 분석이 제기됐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범죄사실)는 40여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판(재상고심)을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지연되도록 하고,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해 전범기업 쪽 손을 들어주려 한 혐의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 쪽 대리인을 직접 만나 전합 회부 계획을 전달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소송 서류를 감수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2∼17년 자신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행정처에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라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토록 해 실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불이익 방안에 브이(V) 표시를 하는 등 직접 결재하고 서명했다는 것이 그간 검찰 조사 결과다.

이 밖에도 양 전 대법원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전국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대부분 연루돼 있다.

1970년 사법시험 12회로 법조인이 된 양 전 대법원장은 1975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돼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93년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고, 이어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법원행정처 차장, 부산지방법원장, 특허법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5년 장관급인 대법관에 올랐고, 2011년 2월 대법관 임기가 끝나 ‘야인’으로 돌아간 지 7개월 만에 다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법원장 지명을 받아 2017년까지 재직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남의 죄를 심판하는 자리에 섰던 그가 이제 심판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됐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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