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2 17:31
수정 : 2018.06.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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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다문화 도서관에서 예멘에서 온 남매 다섯명이 미술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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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피해 제주 온 다섯남매 가족 위해
미술치료사·한국어 선생님 등 ‘작은 학교’ 꾸려
“도화지·크레파스 보고 탄성 지른 아이들 잊지 못해”
예멘 난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30대 워킹맘
“전쟁 피해왔을 뿐…다 똑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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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다문화 도서관에서 예멘에서 온 남매 다섯명이 미술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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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제주의 한 다문화 도서관에 예멘에서 온 남매 다섯 명이 모였다. 20살 라일라(가명)를 맏이로,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카림(가명·9), 넘어져 왼팔에 깁스를 한 마리암(가명·7), 차를 탈 때마다 앞자리를 고집하는 우마르(가명·6), 또래답게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파티마(가명·4)까지 다섯 남매는 열흘 전부터 아버지 무함마드(가명·37)와 함께 제주의 한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이들 남매는 하루에 한 번씩 다문화 도서관을 찾아 두 시간 정도 미술과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예멘 아이들을 돕고 있는 미술치료사 정은혜(47)씨와 다문화 도서관의 선생님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작은 ‘임시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다. 예멘의 난민신청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세간의 오해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서는 ‘공존’을 위한 자발적인 실험과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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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가명·7)은 도화지 위에 감옥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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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남매가 모여 앉은 테이블 위에 널따란 도화지가 펼쳐졌다. 색색의 크레파스를 든 아이들이 도화지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미술치료사인 정씨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아이들의 심리를 가늠했다.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무작위로 선과 형태를 이어 도화지를 금세 채워나갔다. 마리암의 그림은 조금 별났다. 마리암은 파란색 테두리의 사각형 안에 붉은색 세로선을 죽죽 긋더니 그 안에 아랍어 단어를 써놓았다. 무엇을 그렸는지 묻자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카림이 대신 답했다 ‘prison(감옥)!’ 일곱 살 마리암이 도화지 위에 처음 그린 그림은 감옥이었다. 감옥을 그린 이유를 묻자 마리암은 웃기만 할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정씨는 “미술교육을 자주 하지만 이 또래 아이들이 감옥을 그리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예멘에서 자동차 엔지니어였던 무함마드는 2015년 아내를 총격으로 잃은 후, 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매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지난 5월 제주도에 왔다. 정씨는 이들 가족과 말그대로 ‘무작정’ 만났다고 한다. “제가 미술치료사라 아이들에 관심이 많은데, 제주도에 온 예멘인들 중에 아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그래서 수소문해 무작정 그 숙박업소를 찾아갔죠.” 숙소에 도착해 구글 번역기로 서툴게 번역한 ‘나는 미술치료사다.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아랍어 문장을 내밀자 예멘인들이 ‘우루루’ 모여 정씨를 숙소의 한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정씨는 무함마드와 다섯 남매를 그때 처음 만났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이 제가 꺼내든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보며 작은 탄성을 지르는 순간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정씨는 “무작정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한다. 제주도에서 학원 강사 등으로 근무하는 외국인 커뮤니티는 자기 일처럼 무함마드 가족이 머물 집을 수소문하고 가족의 이사를 도왔다. 무함마드 가족들을 받아들인 제주가족들도 정씨와 안면이 없는 ‘지인의 지인’이었다. 정씨와 지인들이 진행하는 수업도 “아이들에게 규칙적으로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정씨는 “무함마드 가족을 돕는 ‘배후’는 우연과 호의가 모여 순식간에 만들어진 ‘점조직도 아닌 점들’”이라 말한다. 예멘인들 뒤에 ‘난민브로커’가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정씨가 답답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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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씨와 아이들이 제주의 다문화 도서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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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이 끝나고 다문화 도서관을 운영하는 ㄱ씨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일이삼사오육칠팔구!” 일주일 넘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은 익숙하게 한국어 숫자를 외쳤다. 수업은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카드를 펼쳐놓고 선생님이 한국어 숫자를 외치면 해당 카드를 골라내는 게임으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아직 ‘삼’과 ‘육’을, ‘오’와 ‘칠’을 헷갈려 했지만 그래도 자신만만하게 한국어 숫자를 외치며 카드를 골라냈다. 한국에 머문지 한 달 가량, 아이들은 서툴지만 조금씩 한국어 숫자와 ‘좋아요’, ‘슬퍼요’ 등 한국어 단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의와 호의로 시작한 일들은 뜻하지 않은 반응을 낳았다. 지금처럼 여론이 들끓기 전 ‘전쟁을 피해 온 예멘 사람들이 있다’는 말만 듣고 선뜻 가족을 맞아들인 ㄴ씨는 최근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갓난 아이를 키우는 30대 ’워킹맘’인 ㄴ씨는 “주변 애기엄마들이 많이 우려하더라구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맘카페에 예멘 난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고요. 제가 예멘 가족과 함께 사는지 모르는 지인이 저한테 예멘인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서명을 보내기도 했어요”고 전했다. ㄴ씨는 “불안해 하는 것을 이해한다. 나도 그랬었다”면서도 “하지만 아이를 함께 씻기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다보면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더라구요. 다만 이들은 전쟁을 피해왔을 뿐이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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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이 그린 ’집’. 옆에는 자신의 예멘친구인 ’하민’과 ’압둘라’도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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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는 제주도에 좀더 머물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무함마드 가족이 그나마 익힌 한국말은 ‘감사합니다’였다. 정씨는 “무함마드 가족이 작은 일에도 황송해 하며 감사하다고 해서 오히려 미안할 정도”라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걱정될 정도로 많이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은 이제는 조금씩 적응해 ’아이다워‘ 졌다. 정씨는 최근 망설임없이 ‘올바르다고 믿는 행동’에 뛰어든 평범한 이들의 용기가 폄하받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불이 났는데 저 안에서 아이가 울고 있으면 사람을 구하고 보는 거 잖아요? 저와 제 친구들은 다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제주/글·사진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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